김복진은 1920년 일본의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한국의 최초의 근대 조각가이다. 그는 1923년에 이서구(李瑞求), 김기진(金基鎭) 등과 신극단체 ‘토월회(土月會)’를 조직하고, 극단의 무대 미술을 담당했다. 대표적으로 1923년 7월 4일에 조선극장 무대에 올린 작품 「기갈(飢渴)」의 무대 장치가 있다. 김복진은 제2회 「기갈」의 무대장치를 같이 했던 안석주(安碩柱)와 함께 8월에 ‘토월미술연구회’를 결성하였다.
김복진과 안석주는 토월미술연구회의 회원을 모집하여 경성 정동(貞洞)의 정칙강습원(正則講習院)에서 1923년 8월 6일부터 9월 10일까지 기한을 정하여 매일 9시부터 12시까지 미술 연구를 하도록 했다. 회비를 따로 받지는 않고 모델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주일에 약정 금액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이 연구소는 일종의 미술학원처럼 미술연구와 강습을 진행했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칙강습원은 1921년 6월에 창립되었던 정동 24번지의 강습소인데, 1922년에는 정운상(鄭雲裳)이 인수하여 확대하고,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 입시를 위한 학습소로 기획했던 학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