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부문에서 「남」 으로 입선한 화가. 시인·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9년 7월 미술집단 ‘마마’ 회원이 되었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갤러리에서 주현(周現)과 함께 2인전을 열어 추상미술 계열의 사진과 회화를 전시하였고, 일본 자유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참여하였으며, 1940년까지 전위예술로서의 추상미술이나 전위사진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41년 이후 미술 창작 작업이나 비평을 중지하고 일제의 학병, 지원병, 징병을 선전하고 선동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41년 4월 전후 자오선(子午線)에 입사하였다. 1943년 2월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최한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에 참가하였고, 4월 전후한 무렵부터 1944년 2월까지 『문화조선』 기자생활을 하였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가담하였다.
1943년 8월 조선군보도대 보도연습에 참여하였다. 산문과 시를 통해 일제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협력을 위한 문화의 역할을 강조하고, 조선인의 지원병 및 징병참여를 독려하였다.
해방 후 1946년 5월 26일 당시 서울신문사 출판국 사원으로 재직하였다. 서울신문사가 발간한 『신천지』 편집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9년 12월 경향신문사에서 월간지 『신경향』을 창간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하다가 이듬해인 1950년 3월 경향신문사를 퇴직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된 바가 없다.
참고문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Ⅳ-17(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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