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1930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유학하고 광주에 돌아와 개인전을 열었다. 1939년 중국의 각지의 전적사생(戰跡寫生)한 것을 전시한 전람회를 열었다.
그의 생애와 활동사항에 대해서는 신문기사를 통해서 단편적인 사실이 확인된다. 1930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3학년 때 가정형편으로 중퇴했다. 광주로 돌아와 전라남도 상품진열관에서 1934년 1월에 개인전을 열고 49점의 유화를 전시했다. 1934년 9월 8, 9일 이틀간 여수 여천금융조합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미술전람회는 동아일보사 부산⋅광주⋅목포 신문지국의 후원하에 열렸으며, 여수에서 그린 바다 풍경화 40여 점을 전시했다. 1936년만주(滿洲) 신경(新京)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이 백조회(白鳥會)를 창립했으며 그 임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올려있다. 1939년 8월에는 지성렬 화백의 북중지전적사생전(北中支戰跡寫生展)이 경성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는북경⋅상해⋅남경 등 중국 각지에서 전선(戰線)을 사생한 작품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에 관한 신문기사들로 추측해 보면, 1936년 만주에 있으면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부터 종군화가로 전선 회화를 그려 1939년 귀국, 전시회를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후 지성렬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