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돈은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여 함경남도 원산에서 성장하였다. 일본미술학교에 유학하였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귀국 후 원산에서 교사로 재직했고, 한국전쟁 때에 부산에 정착하였다. 부산 조선방직에 재직하면서 작품제작을 지속했고, 부산지역 미술대학에 출강했다. 부산의 원로화가로서 88세와 90세를 맞아 개인전을 열었다.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하여 함경남도 원산에서 성장했다. 원산상업학교 졸업 후, 193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34년 봄 동경 일본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 양화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34년 6월 29일 원산미술연구회 주최, 조선일보사 원산지국 후원으로 한상돈 양화전을 열었다. 같은 해 10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수원 공회당(公會堂)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40점의 유화를 전시했다. 이듬 해 1935년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원산 공회당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여기 출품된 작품은 「케이 양의 좌상」, 「금강산 스케치」 등 50여 점이었다.
1935년과 1936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이 시기 고향인 원산에서 결혼을 하고, 원산공립중학교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해방 이후 원산의 조선미술동맹 맹원으로 노동자 휴양지나 금강산 마을의 농부들을 그렸다.
1950년 12월 원산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왔으며, 생계를 위해서 동아극장 영화 간판을 그리거나 경남도청의 차트 도안을 그렸다. 1950년대 중반부터 조선방직 도안사에 취직을 하였고, 부산풍경을 그리는 작품 활동도 병행하였다. 1956년에 그린 유화 「방직여공」은 점심식사를 하는 여공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조선방직에서 일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또한 「송정」, 「해운대」, 「부산항」 등 부산 여러 곳의 풍경을 유화로 그렸다.
부산대학교 건축과, 동아대학교 미술과에서 강의했다. 부산미술협회 고문과 부산시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1992년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92년 부산시 문화상 수상(전시예술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수상(연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