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탄금도」로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을 수상한 화가.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936년 조선으로 귀국하여 1937년 조선일보사 광고부에 입사하는 한편,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와 동양화부에 3점이 입선하였다. 1940년 8월 11일 조선일보사의 강제 폐간으로 퇴사하여 김천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부임하였다.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탄금도(彈琴圖)」로 동양화 특선과 함께 창덕궁상을 수상하였다. 해방 후 김천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가 김천여자고등학교, 문경고등학교, 경부여자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영주여자고등학교의 교장을 역임하면서 작가로서보다는 교육활동에 집중하였다. 1965년 효성여자대학 생활미술과 주임교수로 취임하면서 미술활동을 활발하게 하였고,많은 조선미술전람회 작가들이 채색화에서 수묵으로 돌아선 반면, 그는 일본화풍을 계속 이어갔다. 1978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제12회 국화전 입상(1935)
제7회 청룡사전 입상(1935)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당신자(唐辛子)」, 「승무(僧舞)」입선, 서양화 「구상여인(丘上女人)」입선.
제17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참묘(參墓)」입선.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구홍(口紅)」, 「여일(麗日)」입선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탄금도(彈琴圖)」특선(창덕궁상), 「봉선화(鳳仙花)」입선.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한운(閑韻)」(무감사 출품).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암향(暗香)」, 「농악(農樂)」입선.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가일(佳日)」입선.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 「대춘(待春)」입선.
참고문헌
- 『근대채색인물화』(인천광역시시립박물관, 2011)
-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 목랑 최근배』(수성아트피아, 2009)
- 『조선미술전람회기사자료집』(한국미술연구소 편, 시공사, 2002)
- 『조선미술전람회도록』(조선미술전람회 편, 경성: 조선미술전람회, 1937∼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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