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빅토르 최는 해방 이후 소련에서 서방의 록 음악을 소개하여 유행시켰던 고려인 가수이다. 아버지는 고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1982년에 첫 앨범 「45」를 발표하였다. 1984년에 레닌그라드 록 축제에 참가해 수상하였다. 1987년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실행으로 개혁·개방 분위기가 전개되자 소련에 서방의 록 음악을 소개하였다. 이때 발표한 앨범 「혈액형」은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관여한 소련 사회에 반전 메시지를 전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빅토르 최는 변화를 바라는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록 음악을 통해서 희망을 전하였다.
정의
소련에서 서방의 록(rock) 음악을 소개하여 유행시켰던 {고려인 가수}.
개설
생애
1987년에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카 정책이 시행되면서, 소련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개방정책으로 인해 서구와 교류가 더 쉬워졌고, 당국의 간섭도 확연히 누그러졌다. 이 때 빅토르 최의 록 음악 활동은 절정에 이르러, 1988년부터 덴마크, 프랑스, 미국을 방문하여 공연하였고, 1990년에는 일본도 방문하였다. 잦은해외 공연을 경험한 그는 소련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열정을 끊임없이 나타냈지만, 1990년 8월 15일에 라트비아(Latvia)의 수도 리가(Riga)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1987년에도 레닌그라드 록 축제에서 상을 받은 그는 「혈액형」이라는 앨범을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관여한 소련 사회에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어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어서 1987년에는 영화 「바늘(이글라)」에도 출연하여 대중 속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갔다.
이후 그는 다시 미국을 방문하여 록 음악 공연을 펼치며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대조적인 사회상을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고, 프랑스에 머물며 앨범 「마지막 영웅」을 녹음하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모스크바(Moskva) 공연을 시작으로 여름 내내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서 라트비아 라가로 옮겨별장에서 새로운 곡을 만들다가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곡들은 사후에 「검은 앨범」이라는 이름으로 키노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빅또르 최의 삶과 음악』 (이대우, 뿌쉬낀하우스, 2012)
- 『고려신문』 (빅토르 최 특집호, 1992년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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