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사 소장 『법어(法語)』는 1577년(선조 10)에 전라도 순천(順天)의 송광사(松廣寺)에서 간행한 목판본으로, 『법어』와 『몽산화상법어약록(蒙山和尙法語略錄)』이 합철된 법어집이나, 『법어』의 뒤에 「시각오선인법어」가 부록되었다.
『몽산화상법어약록』은 보통 『몽산법어약록』이라 부르는데, 고려 말의 승려 나옹 화상(懶翁和尙)이 1350년(충정왕 2) 여름에 중국 평강(平江) 휴휴암(休休庵)에 있던 원나라 고승 몽산 화상 덕이를 찾아보고 돌아온 후, 몽산의 법어(法語)를 약록(略錄)하여 엮은 책이다. 2011년 3월 26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천안사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법어』는 권수제 아래에 ‘혜각존자역결(慧覺尊者譯訣)’로 표기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조선 세조대의 승려인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가 우리말로 번역하고 구결했음을 알 수 있다. 후반부에 편철된 『몽산화상법어약록』은 나옹이 1350년(충정왕 2)에 몽산화상(蒙山和尙) 덕이(德異)의 설법 내용을 편찬한 것으로 간화선(看話禪)의 교과서로 불린다. 1460년(세조 6) 조선 세조조의 승려 신미가 한글로 번역한 것이 전해지는데, 세조조의 국어 표기가 아니라 16세기 중엽의 국어 표기이다.
몽산 덕이는 남송 말에서 원나라 초기에 활약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선종 승려로 만항(萬恒)‚ 일연(一然)‚ 혼구(混丘) 등의 승려들은 물론 이승휴(李承休)와도 교류하면서 원 간섭기 고려 불교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그의 사상은 우리나라 불교계의 중요한 흐름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때문에 『몽산화상법어약록』은 고려 말 이후 불교계에서 중요시되어 조선 후기까지 여러 차례 간행되었고, 세조대에는 신미가 언해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하였다.
표제는 『법어법어경(法語法語經)』으로, 1책이다. 책의 크기는 28.7×18.5㎝이고, 반곽의 크기는 18.6×12.9㎝이다. 계선이 있고, 한 면이 7행 15자로 되었으며 판구는 백구(白口), 어미는 상하내향 삼엽화문어미(上下內向三葉花紋魚尾)와 상하내향 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가 함께 있다. 권말에 ‘만력오년정축계하일 순천지조계산송광사류판(萬曆五年丁丑季夏日順天地曺溪山松廣寺留板)’이라는 간기가 있다. 표지는 후대에 새로 장정하였다.
『법어』는 4편의 법어로 구성되었다. 즉「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인데, 이를 『사법어(四法語)』라고도 한다. 앞의 셋은 중국 승려들의 법어이고, 마지막은 고려 수선사(修禪社) 10세(世) 사주(社主)인 혜감국사(慧鑑國師) 만항(萬恒)의 법어이다. 그런데 만항에게 아호(雅號)인 고담(古潭)을 지어 준 사람도 몽산 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법어들은 모두 승려 덕이와 관계되었다. 또한 사법어 뒤에는 『몽산화상법어약록』의 부록인 「시각오선인법어보제존자(示覺悟禪人法語普濟尊者)」가 추가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환산정응선사시몽산법어」은 정응선사(正凝禪師)가 몽산 덕이에게 신심(信心)을 가진 후에 계행(戒行)에 힘쓰고‚ 그런 후 다시 조주(趙州)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열심히 탐구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 글이다.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는 숭장주(崇藏主)가 행각(行脚)을 떠나는 제자에게 성실한 마음으로 한시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다듬고 무자 화두를 탐구하면 점차적으로 깨달음을 얻어가며 이때 자신보다 앞선 수행자를 보면 정성껏 청익하여 깨달음을 완성해 가라고 당부한 글이다.
「몽산화상시중」은 몽산 덕이가 대중에게 행한 설법으로 세속의 번뇌와 모든 인연을 끊고 외출과 독서도 삼가한 채 일심으로 선수행을 하면 3년 이내에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는 내용이고, 「고담화상법어」는 고려 승려 만항의 설법으로 참선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방법을 버리고 오직 조주의 무자 화두만을 쉬지 말고 생각하면 점차 마음이 맑아지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글이다.
『몽산화상법어약록』에는 몽산 덕이의 설법인 「시고원상인(示古原上人)」, 「시각원상인(示覺圓上人)」, 「시유정상인(示惟正上人)」, 「시총상인(示聰上人)」,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 수록되었다.
이 책은 1577년(선조 10)에 간행된 판본으로 1467년(세조 13)에 간행된 간경도감 본과 편찬 체제가 다를 뿐 아니라 훈민정음의 표기법도 다르다. 따라서 조선 중기 국어사의 연구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원래 『몽산화상법어약록』에 부록으로 붙어 있던 나옹 혜근의 「시각오선인법어」가 『법어』 뒤에 함께 수록되었는데, 이런 체제는 1573년(선조 6)에 석왕사(釋王寺)에서 간행한 한문본 『법어』에서 「시각오선인법어」를 『몽산화상법어』와 별도로 『사법어』 뒤에 붙인 체제를 계승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임란 이전의 판본이라는 점에서 그 희소성은 물론 서지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