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백자 청화 영빈이씨 묘지·명기 및 석함은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묘지(墓誌)와 명기이다. 영빈이씨의 묘인 수경원에서 출토되었는데 영빈이씨는 사도세자의 어머니이다. 묘지는 장방형으로,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묘주의 행적과 가계 등을 적어 넣었다. 명기는 모두 20점인데 보·작·준·향로·호·접시 등 제기를 본뜬 작은 부장품이다. 석함은 모두 3개로, 각각 2벌의 묘지와 명기를 담았던 것이다. 조선 후기 왕실 관련 유물로서 묘의 주인과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도자사적·역사적·서지학적가치가 크다.
정의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영빈이씨의 묘에 부장하기 위해 제작한 묘지와 명기.
개설
내용
특징
묘지의 크기는 가로 16.3㎝, 세로 21.7㎝로 계선을 긋고 그 안에 글자를 적어 넣었다. 묘지명은 9줄 15자씩 구성되었으며, 글자체는 해서체이다. 영조가 ‘어제 영빈이씨 묘지(御製暎嬪李氏墓誌)’라는 제목으로 묘지문을 직접 지었으며, 글씨는 마지막장에 ‘금성위 신박명원 봉교서(錦城尉臣朴明源奉敎書)’란 글귀로 보아, 화평옹주(和平翁主)와 혼인한 금성위 박명원이 썼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영빈이씨의 가계와 성품, 영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1남 6녀의 자식에 관한 내용, 영조가 표한 애도의 마음 등이 기록되었다.
명기는 모두 20점으로 보(簠) · 작(爵) · 준(罇) · 향로 · 호 · 접시 등 제기를 본뜬 작은 부장품으로 왕실의 격에 맞게 구성되었다. 새하얀 태토와 유색이 매우 정갈하고 바닥 또한 고운 모래로 받쳐 구운 후 갈아내어 역시 정갈하다. 특히 보는 전면에 음각 문양을 새겨 넣었으며, 술잔인 삼족형의 작과 제사 때 술이나 명수(明水)를 담던 준도 눈에 띈다. 일부가 파손된 것이 있고, 호의 경우 유약이 서로 붙어 몸체와 뚜껑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었다.
석함은 모두 3개로, 각각 2벌의 묘지와 명기를 담았던 것이다. 석함 내부에 홈을 파고 묘지와 모래를 번갈아 놓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석함 2개의 뚜껑은 남아 있으나, 하나는 뚜껑이 결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서울의 문화재(증보판)』3(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1)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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