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코타. 높이 27㎝, 너비 20㎝, 두께 1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조각가 권진규(權鎭圭)가 자신의 얼굴을 마스크 형태의 테라코타로 제작한 자소상(自塑像)이다. 테라코타(terra-cotta)는 “구운 흙”이라는 뜻으로 흙을 높은 온도에서 구워 조각품을 제작하는 기법을 말한다. 테라코타 기법은 흙으로 만든 것을 바로 구워내지 않고, 먼저 찰흙으로 조각을 한 뒤 이것을 다시 석고의 형틀로 떠내고, 이 형틀에 흙을 다시 채우되 속이 비도록 하여 구울 때 터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기법이다.
테라코타 기법은 권진규가 가장 선호한 조각 기법이었는데, 1971년의 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돌도 썩고 브론즈도 썩으나 고대의 부장품이었던 테라코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잘 썩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테라코타는 1만 년 전 것이 있지요. 작가로서 재미있다면 불장난에서 오는 우연성을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다는 점과 브론즈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딴사람(끝손질하는 기술자)에게로 가는 게 없다는 점입니다”라고 테라코타의 장점을 설명했다.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함께 한 기법인 테라코타의 장점은 당대성에 갇히지 않는 근원적인 영원성을 추구한 작가의 취향에 부합했다. 또한 온전히 형태를 통제할 수 있으면서도 자연이 주는 우연성을 같이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신재료인 철재나 용접이라는 신기법을 이용한 추상조각이 성행했던 1960~70년대의 한국 조각계에서 테라코타를 이용한 작업방식은 권진규가 유일했으며, 그러한 탓에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조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권진규는 자신의 이미지를 자주 이용하였는데, 이 작품처럼 마스크 형태 외에 두상과 흉상으로도 제작했다. 흉상 가운데 잘 알려진 작품인 「가사를 입은 자소상」은 구도자적인 금욕성과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을 함축한 강렬한 자아 이미지를 제시하였다. 다수의 자소상을 미루어 보건대, 권진규가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내적 고뇌를 표출하고 자아를 확인하기를 즐겼으며, 가장 잘 아는 대상으로서 자신을 제작하면서 표현적 실험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마스크 형태의 조각은 개인의 내면과 개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로서 안면에 집중하며 그 핵심에 있는 이목구비만을 집약해낸다. 이 작품에서 긴 코와 깊이 팬 눈자위, 광대뼈와 마른 턱 등의 형태는 작가의 사실적 얼굴 모양을 담으면서도, 고상한 정신성에 더하여 고독과 슬픔을 표현한다. 또한 테라코타가 주는 거친 질감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응결된 듯한 초시간적인 느낌이 강렬하게 묻어나고 있다.
이 작품은 특별한 인연을 담고 있는데, 작가는 작품의 뒷면에 붓으로 “呈 金廷帝 權鎭圭 作(정 김정제 권진규 작)”이라고 써서 자신의 제자인 김정제에게 선물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권진규는 1971년부터 수도여자사범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 1972년 응용미술과의 학생이었던 김정제가 그의 강의를 수강했다. 권진규가 1973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쓴 두 통의 유서 가운데 하나는 김정제에게 보낸 것으로 거기에는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작품과 유사한 작품이 두 점 더 존재한다. 한 점은 석고로 만든 것으로 다른 두 작품의 모본으로 추측되는 작품이며, 또 다른 한 점은 테라코타로 제작되어 이 작품과 유사하지만 세부에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 두 작품 모두 일본의 도시마 야스마사[戶嶋靖昌]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시마 야스마사는 무사시노미술대학 시절에 권진규와 친분이 있었던 서양화가이다.
이 마스크 형태의 자소상은 1958년 제4회 일양회(一陽會)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1965년 신문회관 화랑에서 개최된 최초의 서울 개인전에서 전시되었고 포스터의 이미지로도 사용되었다. 또 1968년 일본의 도쿄 니혼바시화랑[日本橋畵廊]의 개인전에서도 전시되었던 작가의 애정이 깃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