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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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작품
이응노가 1940년대에 그린 한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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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이응노가 1940년대에 그린 한국화.
개설

한지에 수묵담채. 세로 130㎝, 가로 117㎝.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등나무」는 일본 유학 이후인 19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은 열려진 대문 사이로 집안의 마당과 우물, 마루와 방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점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사생을 통하여 얻은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대문 안의 소소한 사물들을 들여다보는 듯한 사실성을 보여 준다.

내용

이응노는 문자추상으로 대표되는 추상화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해방 이전 수업기에는 전통적인 화제인 대나무를 그리는 수묵화가로 출발했다. 충청남도 홍성 출생인 이응노는 1920년대 초에 상경하여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에게 서와 사군자를 배웠으며,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의 3부 서와 사군자부에 「청죽」을 입선시키면서 이름을 알렸다. 1932년에 조선미술전람회의 서예부가 폐지되고 사군자부는 동양화부로 흡수되면서 전통 수묵화의 한계를 깨닫게 된 작가는 1935년경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美術學校]에서 동양화를, 혼고양화학교[本鄕洋畵學校]에서는 서양화를 배웠다. 특히 일본의 이른바 신남화(新南畵)의 작가로서 주요 인물인 마츠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의 덴코화숙[天香畵塾]에서 일본의 근대 남화를 학습하게 되었다. 일본의 전통 수묵화는 메이지 후반 이후 다이쇼기를 거치면서 화면구성과 묘사법 등에 있어서 서양화법의 요소들을 절충시킨 근대 남화로 변모하였는데, 대표적인 작가가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마츠마야시 게이게츠, 고사카 시덴[小坂芝田] 등이었다.

그는 1939년부터 1945년 귀국하기 전까지 일본화원전(日本畵院展)에 작품을 계속 입선시키면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사군자가 아닌 풍경화를 출품하기 시작했는데, 「동도하안(東都河岸)」, 「동원춘사(東園春事)」가 그것이다. 이후 연이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입선한 1939년 「하일(夏日)」, 「황량(荒凉)」, 1940년 「추(秋)」 등의 작품은 일본에서 습득한 신남화풍의 풍경화였다.

일본 유학 이후인 1940년대에 그려진 「등나무」는 전통적 수묵의 기법을 이용하면서도 사생을 통해 취득한 일상적 풍경이라는 소재와 서양의 일점투시법적인 시점, 직사각형의 화면 형태, 양식화된 전통 준법을 벗어난 묘사적 필치 등을 채택하여 제작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 작품이 전통적 남종화법에 서양화법의 요소를 절충한 일본의 근대 남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상단의 등나무 꽃과 잎사귀에 흰색으로 강조한 보라색과 녹색을 진하게 채색하여 불투명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주어서, 묵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을 화사하면서도 이국적으로 만든다. 대문 옆의 굴뚝과 무심히 놓인 빗자루, 마당 안의 도르래가 달린 우물 등의 소재는 일상의 소소한 사물들을 포착하는 작가의 섬세함을 드러내고, 무심히 들여다보는 듯한 시점의 구성에 더하여 세부적 사실성을 확보해준다.

이 작품은 먹선이 주조를 이루어 전통적인 수묵화의 특징이 강하게 남아있지만, 이응노의 일본 유학시기 작품들 가운데 「동도하안(東都河岸)」은 완연히 서양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구도와 기법으로 그려졌다.

이응노는 전람회 그림을 그리면서 표구제작을 하거나 ‘개척사(開拓社)’라는 업체명을 내걸고 간판업을 하기도 했다. 일본 유학 시기에는 신문배달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해방 이후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화단에 앵포르맬을 필두로 현대화의 열풍이 불어오던 1958년에 프랑스로 떠나 정착하면서 콜라주 기법과 사의(寫意)적 추상, 서체(書體)적 추상 등을 시도했다.

참고문헌

『이응노-서울, 파리, 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 1994)
「이응노 회화연구」(김학량,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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