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조선에 평화를」, 「창고」, 「맨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도일 이후 막노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에 잠시 다니기도 했다. 사회주의 계열의 전람회인 일본 앙데팡당전에 참여하여 작품을 출품했던 그는 1953년부터 화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청년미술가연합을 중심으로 한 ‘닛뽄전’에 참여하였고 타케미야화랑[竹見屋画廊]에서 첫 개인전이 개최되었으며 재일조선미술협회에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 시기 조양규는 6.25전쟁으로 민족의 비극적 삶을 소재로 한 「조선에 평화를」(1953), 하층 노동자들의 삶을 표현한 「창고」, 「맨홀」 연작을 발표하면서 1950년대 일본 리얼리즘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 1959년 무라마츠화랑[村松畵廊]에서 두 번째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나 이듬해 북송선을 타고 월북했다. 평양에 도착한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에 1년간 유학을 다녀온 것 이외에 북한에서의 활동은 알려진 바가 없다.
참고문헌
- 「조양규의 조형 이미지 연구-전위적 방법으로서의 정치성」(정현아, 『한국근현대미술사학』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9)
- 「조양규와 송영옥」(윤범모,『한국근현대미술사학』18집,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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