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를 역임한 작가. 극작가·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연극시장이 해체되자, 그는 협동신무대, 황금좌, 희락좌 등 2류 대중극단들에 극본을 제공했는데, 여전히 무명작가에 가까운 처지로 폐결핵까지 걸려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1935년 동양극장이 건립되고 연중무휴의 공연을 하게 되자 그에게도 기회가 열렸다. 1936년에 그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제출했는데 처음에는 지배인 최독견과 연출가 박진에 의해 폐기되었다가 사장 홍순언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황철과 차홍녀가 주연한 이 연극이 크게 히트함으로써 그는 일약 동양극장을 대표하는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동양극장의 전속 작가 시절 「추풍령(秋風嶺)」(1936), 「유정무정」(1936), 「유랑삼천리」(1938), 「북두칠성」(1939) 등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했고 대부분 큰 인기를 끌었다. 「추풍령」의 경우 민족주의적 작품이라 하여 임석 경관에 의해 공연중지를 당하고 피검되는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1937년 6월 일본으로 연극 유학을 떠나 동보극장 연수실에서 몇 달간 극작법을 배우기도 했는데, 이 과정은 뚜렷한 갈등구조와 복선, 클라이맥스가 있는 희곡 구성법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9년 9월 홍순언의 사망으로 동양극장의 사장이 바뀌자 황철, 차홍녀, 박진, 원우전 등과 극단 아랑을 창립했으며, 창립작으로 「청춘극장」(박진 연출)을 올렸는데, 이는 지원병을 소재로 한 극본이었다. 이후 「결혼조건」(1940), 「바람부는 시절」(1940) 등 멜로드라마, 또 송영과의 합작인 「김옥균」(1940), 최고의 인기작 「동학당」(1941) 같은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역사극을 발표했다. 1941년 지원병을 미화한 극본 「동백꽃 피는 마을」을 집필했다. 1942년 조선총독부 외곽단체인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를 맡았다. 「빙화」(1942), 「상아탑에서」(1944), 「새벽길」(1945) 등의 친일극을 공연했다.
해방이 되자, 한동안 친일작가로 몰려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12월에 극단 조선의 「그여자의 반생」(1945)으로 극작을 재개했다. 좌익 진영의 영화동맹 위원으로 활동한 아내 문예봉의 영향으로 그도 남로당 창당 때 「긴급동의」를 공연하면서 좌익 진영에 들어섰다. 1947년 백조악극단의 공연 「천국에서 맺은 사랑」을 마지막으로, 먼저 월북한 아내를 좇아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극작 활동을 못하고 폐결핵으로 요양 중 사망했다.
임승복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36∼152)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5: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 『친일인명사전 』3(민족문제연구소, 2009)
- 『한국 인물연극사』2(유민영, 태학사, 2006)
- 『이야기 근대연극사』(고설봉, 창작마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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