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한반도면 서곡정사 약사전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전기의 석조약사여래입상.
개설
석조약사여래입상은 원래 쌍용사지(雙龍寺址)로 불리던 절터에 있었으나, 1980년경 일대가 광산으로 개발되면서 현재의 서곡정사로 옮겨온 것이다.
내용
입상의 전체적인 비례는 좋은 편이다. 그리고 소발(素髮)의 머리에 가운데에는 육계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둥근 형태로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한데, 눈과 코를 비롯해 입 부분이 마모되어 세부적인 표현은 확인되지 않는다. 귀는 큰 편으로 어깨까지 내려왔다.
착의법은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두툼하게 옷주름을 표현해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두꺼운 옷주름은 가슴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U자 형태로 흘러내리고 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주름을 도식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했다. 오른손은 허벅지 부분까지 내렸고, 왼손에는 둥근 형태의 약함을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은 불신(佛身)과 광배, 소발의 머리와 높고 큰 육계, 마모가 되긴 했지만 양감이 풍부한 얼굴 표현 등이 특징이다. 특히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에 약함을 든 약사여래입상의 도상은 삼척 천은사 소장의 통일신라 금동약사여래입상 등에서 확인되며, 용인 호암미술관의 출토지 불명 석조약사여래입상도 같은 도상을 취한다. 통일신라 도상을 기본으로 하여 제작된 고려 전기의 석조약사여래입상으로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영월군(강원문화재연구소, 2004)
- 『한국의 사찰문화재』강원도(문화재청·(재)불교문화재연구소, 2002)
- 『영월군의 역사와 문화유적』(한림대학교박물관, 1995)
- 허형욱, 『한국 고대의 약사여래 신앙과 도상 연구』, 홍익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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