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 향교에서 유생들이 선비들의 명단을 기록한 유적에서 범죄자나 비위자의 이름을 삭제하는 일.
개설
내용
유적의 삭제는 원칙적으로 유생들의 자율적 결정으로 이루어졌지만, 때로는 국왕이나 고관들의 지시나 종용으로 재회에서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적에서 삭제되면 과거를 관장하는 사관(四館: 승문원, 교서관, 성균관, 예문관)에 통지되어 자동적으로 과거의 자격이 상실되고, 전국의 교육 기관에도 통지되어 다시 등록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비행이 사실이 아니거나 억울한 것으로 판명되거나 국왕의 특명이 있을 경우 재회의 결정으로 복적 될 수도 있었다.
변천과 현황
17세기 이후 당쟁이 격화된 이후에는 각 당에 가까운 장의와 유생들이 편을 나누어 상대방 유생들을 삭적하는 등으로 정치적 혼란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청금록의 삭제가 큰 문제로 비화한 사례로는 1610년(광해군 2)에 정인홍(鄭仁弘)이 차자를 올려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을 비판하자, 이목(李楘) 등의 유생들이 그를 삭적한 일이 있었다. 또 1650년(효종 1)에는 유직(柳㮨)이 상소하여 율곡 이이(李珥)가 불교에 빠졌던 일을 비판하자, 역시 청금록에서 삭적되고 부황까지 당한 일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효종실록(孝宗實錄)』
- 『태학지(太學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과거제도사』(이성무, 민음사, 1997)
- 『한국과거제도사연구』(조좌호, 범우사, 1996)
- 『조선후기 향교연구』(윤희면, 일조각, 1990)
- 『한국교육사자료』Ⅱ(국사편찬위원회, 1975)
- 「정인홍의 정주학 이해: 회퇴변척을 중심으로」(윤정, 『남명학연구』24, 남명학연구소, 2007)
- 「성균관: 조선후기」(신해순, 『서울육백년사』2, 서울특별시, 1978)
- 「조선전기의 공관 연구」(이희권, 『사학연구』28, 1978)
- 「성균관: 조선전기」(신석호, 『서울육백년사』1, 서울특별시, 1977)
- 「이조후기에 있어서의 성균관의 변천과 개혁」(김윤곤, 『대동문화연구』6·7합집, 1970)
- 「선초의 성균관연구」(이성무, 『역사학보』 35·36합집,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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