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1년 진안 용흥사에 봉안하기 위해 조성된 야외의식용 불화.
제작 배경
내용
본존은 육계가 뾰족하고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를 나타냈으며 안면의 묘사와 채색법, 오색의 신광, 배경의 채운 등에서 18세기부터 유행한 독존도 형식의 괘불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727년의 미황사 괘불도, 1753년의 선암사 괘불도 등에서처럼 제 권속을 위계를 구분해 작게 나타내 독존도 형식의 괘불도를 계승하였다.
불화는 봉인(奉仁)을 수화승으로 송수(松壽), 규재(奎宰), 법영(法榮) 등 총 4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봉인은 1910년 만총(萬聰)과 전북특별자치도 남원 선원사(禪院寺)의 비로자나후불도, 명부전 지장도, 대웅전 신중도를 그렸으며 1940년대까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봉인의 양식적 특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불화이다. 당시 불사는 근대기 불교 교단의 대표적인 학승이자 광복 후 조선불교중앙총무원의 제1대 교정을 맡았던 정호(鼎鎬)가 증명(證明)을 맡았다.
형태 및 특징
「천황사 괘불도」의 주존은 여래의 모습이나 손에는 일반적으로 보살이 지물로 드는 여의를 들고 있으며, 가슴을 가로지르는 군의 중앙에 표현한 꽃 장식, 다리 사이로 늘어 뜨러진 영락과 매듭이 표현되었다. 1704년 조성된 수도사 괘불도처럼 장엄신을 도해한 괘불과 유사한 초본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통 괘불도의 요소를 계승하여 배경에 산화하는 꽃을 구름으로 바꿨으나 밑그림, 구성, 세부 모티브, 육신부의 채색, 오색 서기 등에서 전통 방식을 계승한 근대기의 대표적인 괘불도이다.
의의 및 평가
봉인은 1910년부터 1940년대까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불화승으로, 봉인이 그린 괘불도로 근대기 불화승의 양식적 특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2014년 10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김정희,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돌베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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