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보석사는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진락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조구가 창건한 사찰로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고, 1912년부터는 31본산으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진영각에 휴정·유정·영규의 영정을 모셨으나 도난 당하였다. 의병승장비는 공주의 청련암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이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문수보살·보현보살의 좌상은 조선시대 불상 중에 극치라 평가받는다.
정의
통일신라의 승려 조구가 창건한, 충청남도 금산군 소재의 사찰.
내용
그 뒤에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하여 원당(願堂)으로 삼았으며, 1912년부터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조사전 · 지장전 · 산신각 · 의선각 · 적묵당 ·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199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다포집 맞배지붕이며,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 문수보살 · 보현보살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안치하였다.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2011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삼존불은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영각은 휴정(休靜) · 유정(惟政) · 영규(靈圭)의 영정을 모셨던 곳이나 최근에 영정을 도난당하였다. 또한 이 절의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는 공주의 청련암(靑蓮庵)과 보석사에서 무예를 익힌 뒤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가 전사한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로서, 1839년 5월에 금산 군수가 절 입구에 세운 것이다. 영규가 순국한 내용을 적은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서 자획이 뭉개지고 땅에 묻혔던 것을 1945년 정요신(鄭堯臣)이 찾아서 다시 세웠으며, 높이는 약 4m이다.
이 밖에도 절 입구에는 둘레 11m의 큰 은행나무가 있어 199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창건주 조구가 제자 5인과 더불어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상징하는 뜻에서 둥글게 여섯 그루를 심은 것이 하나로 합해졌다고 하며, 나라에 이변이 있을 때는 24시간을 운다고 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의 명산대찰』(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 이능화, 『한국불교통사(韓國佛敎通史)』(신문관, 1918)
주석
-
주1
: 불교의 한 종파의 우두머리인 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큰절에서 갈라져 나온 절. 우리말샘
-
주2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
주3
: 소원을 빌기 위하여 세운 집. 우리말샘
-
주4
: 고승이나 선지식의 영정을 모신 전각. 우리말샘
-
주5
: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
주6
: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공포(栱包)를 짜 올린 집. ⇒규범 표기는 ‘다폿집’이다. 우리말샘
-
주7
: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는 시. 농업과 양잠ㆍ낙농ㆍ양돈 따위가 성하다. 명승고적으로 백제의 유적지 및 계룡산 국립 공원 따위가 있다. 1995년 1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공주군을 통합하여 도농 복합 형태의 시를 이루었다. 면적은 864.29㎢. 우리말샘
-
주8
: 승병을 거느리고 지도하는 책임자.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