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안에서 소유 없이 정결하게 살면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수도회 창설 시기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동료 제자들과 함께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생활 규범을 구두 승인받은 1209년이다. 또한 교황 호노리오 3세(Honorius PP. III)가 프란치스코 성인이 작성한 회칙을 최종 승인한 1223년 12월 29일을 창설일로 보기도 한다.
꼰벤뚜알은 ‘공동’, ‘집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하고, ‘함께 모여 사는 것’을 가리킨다. 수도회 초기부터 성인이 세운 ‘작은 형제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가 수도회의 고유 명칭으로 확정된 시기는 1517년 교황 레오 10세의 칙서에 따라 엄격주의파(현재의 작은형제회)와 구별되면서 부터다.
현재 모원은 이태리 아시시, 본원은 로마에 있다. 세계 5대륙 66개국 35개 관구 664개 수도원에 4,197명의 수사들(이중 주교 17명, 사제 2,907명, 종신부제 13명)가 있다. 이 수도회에서 많은 성인, 복자, 추기경, 총대주교 등이 배출되었는데, 대표적인 성인으로 막시밀리한 콜베와 1986년 4월 13일 시성된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 신부가 있다.
한국 진출은 1958년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강제 추방되었던 파도바 관구의 프란치스코 팔다니(Francisco Faldani) 신부가 로마를 방문한 한국인 허철 신부와 만나 한국 선교에 대해 논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논의 결과로 같은 해 10월 6일 두 명의 수사가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는데, 이곳에서 범일동 본당 사목을 위임받아 첫 사도직을 시작하였고, 1959년에는 대구 범어동 본당의 사목을 위임받아 시작하였다. 1960년 8월 부산 대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유치원, 수도원, 성당을 차례로 완공하였다. 이곳에서 미감아(未感兒) 27명을 돌보기 위해 성 프란치스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나환자들을 위해 국립 부산 오륙도 나환자 마을 상애원 공소 활동도 시작하였고, 1964년 9월에는 대구에 화선 소신학교를 설립하여 성소 육성에도 기여하였다. 1966년 서울 한남동에 수도원을 신축하여 외국에서 부임하는 회원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2년의 기간 동안 거주하는 숙소 및 수도원 연락소로 활용하게 되었다. 현재는 피정 집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본회는 한국 진출 때부터 본당사목과 나환자 봉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사회복지 활동과 함께 국제적인 마리아 신심 단체인 성모의 기사회 한국본부 지원, 1969년에 발족된 평신도 모임 재속 형제회를 동반하는 일도 맡고 있다. 1975년 준관구로, 2001년에 관구로 승격되었다. 2017년 12월 31일 현재 70명의 회원(신부 48명 포함)이 국내외의 선교와 교육사업, 사업사업, 간행물 출판에 활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