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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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에 있었던 조선후기 이오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김자운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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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에 있었던 조선후기 이오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1863년(철종 14) 고려가 망하자 고려 유민을 자처하며 평생 경상도 함안군 모곡(茅谷)에서 은거한 이오(李午)를 향사하기 위해 혈곡리 인곡(仁谷)에 건립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현재 인구서원 터에는 이오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재실인 인산재(仁山齋)가 자리하고 있다.

내용

허전(許傳)이 지은 「흘봉이공묘갈명(屹峯李公墓碣銘)」에 따르면, 본래 월성을 본으로 하던 재령이씨는 고려시대 이우이(李偊儞)가 재령군에 봉해지면서 월성이씨에서 분파되어 재령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이오(李午) 대에 이르러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은거할 곳을 찾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터를 정하고 거처하면서 함안지역에 대대로 세거하게 되었다.

이오는 모곡에 은거한 데서 호를 모은(茅隱)이라 하고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으며 세상을 뜰 때까지 조선에서 벼슬하지 않았다. 사후 재령이씨 후손들은 삼가현(三嘉縣)에 운구서원(雲衢書院)을, 함안군 인곡에 인구서원을 건립하여 이오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저서로는 『모은선생실기(茅隱先生實記)』 2권 1책이 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인구서원을 건립할 때 「인구서원상량문(仁衢書院上樑文)」은 이오의 후손 이성흠(李性欽)이 짓고, 봉안문과 축문은 김대진(金岱鎭)이 지었다. 모두 『모은선생실기(茅隱先生實記)』에 수록되어 있다. 인산재는 1787년(정조 10)에 건립하고 1887년(고종 24)에 중건하였다.

참고문헌

  • - 『모은선생실기(茅隱先生實記)』

  • - 『성재집(性齋集)』

  • - 『여말충의열전』(고려숭의회출판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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