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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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개념
장단, 고저, 발음 등 짜임새가 비슷한 말의 토막을 이어붙이는 문학창작의 한 방식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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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장단, 고저, 발음 등 짜임새가 비슷한 말의 토막을 이어붙이는 문학창작의 한 방식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
내용

시가 또는 율문은 운율(韻律)을 갖춘 것이 산문과 다르다. 운(韻, rhyme)은 같은 소리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율(律, meter)은 짜임새가 비슷한 말의 토막이 이어지는 것이다. 둘 가운데 율은 필수이고, 운은 선택이다. 한국 시가는 운은 선택하지 않고, 필수인 율만 갖추고 있다. 율은 율격이라고 하는 것이 예사이다.

율격을 이루는 단위는 토막(foot)이다. 음보(音步) 또는 율각(律脚)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하다가 토막이라고 하게 되었다. 토막은 음절수가 일정한 것을 기본 요건으로 하고, 부가적인 특징을 갖추기도 한다. 기본 요건만으로 이루어진 단순율격은 일본·이탈리아·프랑스어 시에 있다. 부가적인 특징까지 갖춘 복합율격에는 고저율·장단율·강약율이 있다. 한시(漢詩)는 고저율이고, 산스크리트·고대그리스·라틴어시는 장단율이고, 영시나 독일어시는 강약율이다.

한국 시가도 단순율격이면서 토막을 이루는 음절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가변적인 점이 남다르다. 음절수를 나타내는 자수를 헤아려 34조, 44조 등의 자수율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한동안 통용되었으나 타당성이 없다. 토막을 이루는 음절수는 4를 중위수이면서 최빈수로 하고, 전후 몇 자의 범위 안에서 변한다. 시의 품격을 높이는 정교한 율격을 따로 만들지 않고, 민요의 율격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 이런 특징을 지닌다. 상하층 문화가 공동체적 유대를 이어온 증거의 하나로 율격을 들 수 있다.

한 줄을 이루는 토막 수는 세 토막이기도 하고, 네 토막이기도 하다. 이 둘이 민요에서 대등한 비중을 가지고 양립되어 있다. 네 토막은 대칭의 안정감을 지녀 보행의 율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노래에서 볼 수 있듯이 두 줄 정도로 끝나는 단형이기도 하고, 길쌈노래에서처럼 길게 이어지는 장형이기도 하다. 세 토막은 비대칭의 율동감을 보여 무용의 율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줄 정도 이어지다가 노래 하나가 끝나는 단형이며, 여음이 있는 것이 예사이다. 〈아리랑〉이 좋은 본보기이다.

율격론은 율격사로 이어진다. 향가, 고려 속악가사, 시조, 가사 등 역대 시가 갈래의 율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에 관해 두 가지 가설이 있었다. 모두 중국 시가의 율격을 가져와 정착시킨 것이라고도 하고, 향가의 율격이 후대에 갖가지로 변모한 결과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민요의 율격도 중국에서 가져왔거나, 향가의 후대적 변모인가? 이런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므로 두 가설은 효력이 없다. 선후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역대 시가 갈래의 율격은 민요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해 가다듬은 결과이다. 네 토막이냐 세 토막이냐 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선택 사항이다.

한시를 받아들여 창작하면서 율격에 관한 인식을 갖춘 것은 사실이다. 한시와 대등한 수준의 율격을 자국어 시가에서 갖추려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는 각기 노력했다. 월남에서는 한시와 자수가 같고 고저율까지 갖춘 국음시(國音詩)를 만들어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언어의 차이가 커서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한시의 자수를 자국어 시에서 절묘하게 재현해 57577의 와카(和歌)를 창안했다. 한시 한 줄과 와카 한 줄이 음절수에서 대등하게 했다. 한국에서는 다른 길을 택해, 음절수가 아닌 정보량에서 한시 한 줄과 향가나 시조 한 줄이 대등하게 했다. 일본의 와카는 율격의 이질성 때문에 민요와의 거리가 멀고, 한국의 향가나 시조는 율격을 받아들여 민요와 가깝다. 이것은 상하층 관계의 사회구조와 관련을 가진다.

신라 때 출현한 향가는 네 토막 단시를 민요에서 가져와 율격의 기본으로 삼고 필요한 변형을 했다. 고려의 속악가사는 여음이 있는 세 토막 율격을 민요에서와 거의 같이 사용하고, 경기체가(景幾體歌)에 넘겨주었다. 이런 변화는 문학 담당층이 교체되어 일어났다. 품격 높은 문학을 이룩하던 중세 전기의 귀족이 물러나자 사회 통제가 이완되어 하층에서 즐겨 부르는 민요가 궁중으로까지 진출했다.

사대부가 등장해 중세 후기를 이룩하면서 상층 시가 재건에 필요한 원천을 민요에서 다시 찾아 시조와 가사의 율격을 정립했다. 이 둘은 네 토막의 안정감을 지닌 점이 같으면서, 시조는 단형이고 가사는 장형이다. 시조는 서정시여서 단형이 적합하지만, 가사는 교술시여서 장형이어야 했다. 시조와 가사는 민요의 율격에다 향가에서 전례를 찾을 수 있는 변형을 추가했다. 세 번째 줄 종장의 서두를 특이하게 만들어 시상을 비약하면서 네 줄까지 가지 않고 세 줄로 마무리할 수 있게 했다.

시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형시라고 칭송해왔다. 자수가 3434/3434/3543인 것이 규칙이지만, 예외가 많아 비정상의 정형시라고 하기도 했다. 부적절한 관점을 버리고 다시 살피면 진면모가 나타난다. 시조는 네 토막 세 줄이다. 토막을 이루는 자수는 4를 중위수이면서 최빈수로 하고, 2에서 7까지의 변이가 허용된다. 종장 서두의 첫 토막은 4보다 적고, 둘째 토막은 4보다 많다. 이런 특별한 장치가 있어, 종장을 결말로 삼고 더 늘어나지 않는다. 초·중장에서 하는 말을 받아 종장에서 마무리를 하면서 발상의 차원을 높인다.

시조의 율격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이런 기본형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조금 바꾼 변이형도, 많이 바꾼 일탈형도 있다. 변이와 일탈의 방법에는 축소도 있고 확대도 있다. 사설시조라고 하는 것은 확대 일탈형이다. 변이형이나 일탈형은 물론이고 기본형이라도, 율격의 구체적인 양상은 각기 다르다. 공통율격을 작품마다 상이하게 구현하는 개별율격이 있어, 율격이 두 차원이다. 시조는 정형시이면서 자유시이기도 하다. 한국 시가 율격의 공통된 원리가 시조에서 잘 나타난다.

사설시조와 함께,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새로운 시가 갈래로 등장한 잡가나 판소리는 갖가지 율격을 복합시키고 다채롭게 변형시켜 자유시의 성향을 확대했다. 근대시가 자유시로 시작된 것은 외래의 영향 때문만이 아니고 내재적인 원천을 활용한 결과이다. 전통적 율격을 새롭게 변형하는 시인들은 뛰어난 작품을 창작했다.

참고문헌

『한국 시가의 형식』(성호경, 새문사, 1999)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조동일, 지식산업사, 1999)
『한국 민요의 전통과 시가 율격』(조동일, 지식산업사, 1996)
『한국 시가 율격의 이론』(성기옥, 새문사, 1986)
『한국 고시 율격 연구』(홍재휴, 태학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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