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선부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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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민 두선부(684~741)의 묘지.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7년
  • 권은주
  • 최종수정 202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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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구려 유민 두선부(684~741)의 묘지.

개설

중국 하남(河南) 낙양(洛陽)에서 출토되었다. 개석에는 “대당고두부군묘지명(大唐故豆府君墓誌銘)”이 전서(篆書)로 쓰여 있고, 개석 가장 자리 둘레에 장식 무늬를 새겼다. 지석에는 “대당충무장군섭우금오위랑장상주국두부군묘지병서(大唐忠武將軍攝右金吾衛郞將上柱國豆府君墓誌幷書)”가 제목으로 달려 있다. 묘지의 내용은 두선부의 가계와 당으로 이주하게 된 경위, 두선부의 이력 등이 나온다.

내용

두선부는 684년에 태어나서, 741년 58세의 나이로 죽었다. 두선부의 자(字)는 휘(暉)이다. 묘지에 따르면 두선부의 선조는 원래 부풍 평릉(扶風 平陵: 현재 중국 섬서성 보계시 동부 지역) 사람이었는데, 한(漢)나라 때 안문태수(雁門太守)였던 18세(世) 조상 통(統)이 문무(文武)의 난(亂)을 피해 삭야(朔野: 북방지역)로 도망하여 대대로 살았다고 한다. 다시 후위(後魏: 즉 북위) 때에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흘두릉씨(紇豆陵氏)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6대조인 보번(步蕃)이 서위(西魏)와 북제(北齊)의 전쟁 중에 전란을 피하여 고구려로 망명하였고, 이때부터 두(豆)를 성씨로 삼았다.

이후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두선부의 부친 두졸(豆卒)이 형제들과 함께 당에 투항하게 되면서, 두선부 일가는 당으로 이주하게 된다. 두졸 형제들은 당에서 모두 우대를 받아 고위 관료가 입는 붉은색과 자색옷을 입었고, 이목이주□□제군사(犁木二州□□諸軍事)직과 자금어(紫金魚)를 받았다.

두선부는 악목자해□검교□□□군사(岳牧子解□檢校□□□軍事)와 충무장군(忠武將軍) 섭우금오위랑장(攝右金吾衛郞將) 상주국(上柱國)을 역임하였다. 이밖에 별다른 활동은 확인되지 않으며, 741년 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하다가 병이 들어 낙도(洛都: 낙양)의 황성(皇城) 우위솔부(右衛率府)의 관사에서 사망했다. 무덤은 하남현(河南縣) 재택향(梓澤鄕) 망산(望山)에 두었다.

참고문헌

  • - 『중국 소재 한국 고대 금석문』(곽승훈‧권덕영‧권은주‧박찬흥‧변인석‧신종원‧양은경‧이석현 역주,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

  • - 『唐代墓誌彙編』(周绍良 주편, 上海古籍出版社, 1992)

  • - 「在唐高句麗遺民遺物, 遺跡的現狀及其分布」(拜根興, 『中國曆史地理論叢』 24-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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