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년 겨울 11월에 급찬(級湌)의 관등으로 급찬 김심살(金深薩) 등과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난파관(難波館)에서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고 녹(祿)을 주었다. 사신들은 이듬해 2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이때 박억덕은 일본으로 표류해 갔던 신라인 모자모례(牟自毛禮) 등 37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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