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물성동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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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한원진 (韓元震)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시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임성주 (任聖周)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시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자의,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간 (李柬)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자의,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송래희는 19세기 중엽 헌종과 철종 대의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이다. 효종 때 산림이었던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이며, 1815년 진사 초시에 입격하였다. 1835년 선공감 가감역에 제수된 이후, 뛰어난 학덕으로 성균관 좨주, 대사헌 등에 제수되었다. 정통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여 독서를 통해서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예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의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긍정하였다. 저서로는 『성리논변』과 『금곡선생문집』이 전한다.
송내희 (宋來熙)
송래희는 19세기 중엽 헌종과 철종 대의 유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문신이다. 효종 때 산림이었던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이며, 1815년 진사 초시에 입격하였다. 1835년 선공감 가감역에 제수된 이후, 뛰어난 학덕으로 성균관 좨주, 대사헌 등에 제수되었다. 정통 주자학적 입장을 고수하여 독서를 통해서 이치를 깊이 연구하고, 예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비판하고 율곡의 이기일원론의 입장을 긍정하였다. 저서로는 『성리논변』과 『금곡선생문집』이 전한다.
강문팔학사는 조선시대 학자 수암 권상하 문하에 있던 8인의 충청도 제자이다. 호중팔학사라고도 불렀다. 권상하는 송시열의 수제자로 청풍의 황강 옆에 살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충청도 출신의 저명한 8명의 제자, 즉 한원진, 이간, 윤봉구, 채지홍, 한홍조, 현상벽, 윤혼 등인데 윤봉구, 한홍조, 운혼을 빼고 성징후, 이이근, 최징후를 넣기도 한다. 정통 기호학파의 학설과 정치적 입장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사람과 다른 사물이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토론한 ‘인물성동이론’을 제기하여 조선 성리학의 심성설을 심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강문팔학사 (江門八學士)
강문팔학사는 조선시대 학자 수암 권상하 문하에 있던 8인의 충청도 제자이다. 호중팔학사라고도 불렀다. 권상하는 송시열의 수제자로 청풍의 황강 옆에 살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제자 가운데 충청도 출신의 저명한 8명의 제자, 즉 한원진, 이간, 윤봉구, 채지홍, 한홍조, 현상벽, 윤혼 등인데 윤봉구, 한홍조, 운혼을 빼고 성징후, 이이근, 최징후를 넣기도 한다. 정통 기호학파의 학설과 정치적 입장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사람과 다른 사물이 본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토론한 ‘인물성동이론’을 제기하여 조선 성리학의 심성설을 심화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