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유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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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조선총독부가 만주 봉천성 철령현에 설치하여 한인을 강제 수용한 집거구역이다. 구성원은 평안도와 경상도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상당수의 중국인도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생활은 무척 열악했으며, 경제적 궁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감내해야 했다. 1935년 현재 383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지면적 913정(町), 호당경지면적 2.4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주사변’ 이후 피난민으로 전락한 한인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한다는 명분과 다르게 한인들을 통제하고 억압했던 폭력적인 식민통치기구였다.
철령 안전농촌 (鐵嶺 安全農村)
1932년 조선총독부가 만주 봉천성 철령현에 설치하여 한인을 강제 수용한 집거구역이다. 구성원은 평안도와 경상도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상당수의 중국인도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생활은 무척 열악했으며, 경제적 궁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감내해야 했다. 1935년 현재 383호가 거주하고 있으며, 경지면적 913정(町), 호당경지면적 2.4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주사변’ 이후 피난민으로 전락한 한인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한다는 명분과 다르게 한인들을 통제하고 억압했던 폭력적인 식민통치기구였다.
한족농무연합회는 1930년 4월 북만주 각 지방의 농무회 대표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김좌진 등은 북만주 일대 마을 단위의 농무회와 대종교계 독립운동가, 흑색동맹파의 남대관 등 일부 인사들과 연합하여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1930년 4월 한족자치연합회의 농무계 연합 조직으로서 설치된 한족농무연합회는 북만주 재만한인사회를 통솔하기 위해 각 지역 단위로 조직된 농무조직을 상호 통합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1931년 초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족농무연합회는 이후 북만한족자치연합회의 결성과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의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한족농무연합회 (韓族農務聯合會)
한족농무연합회는 1930년 4월 북만주 각 지방의 농무회 대표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김좌진 등은 북만주 일대 마을 단위의 농무회와 대종교계 독립운동가, 흑색동맹파의 남대관 등 일부 인사들과 연합하여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1930년 4월 한족자치연합회의 농무계 연합 조직으로서 설치된 한족농무연합회는 북만주 재만한인사회를 통솔하기 위해 각 지역 단위로 조직된 농무조직을 상호 통합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1931년 초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족농무연합회는 이후 북만한족자치연합회의 결성과 국민부·조선혁명당·조선혁명군의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