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임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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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은 쇠붙이나 돌로 만든 비석에 새겨진 글자이다. 금석문을 토대로 다양한 학술적 탐구를 진행하는 것을 금석학이라고 한다. 금석문은 제작 당시 사람의 손에 의해 직접 이루어진 것이므로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 중국에서는 청동기 등 쇠붙이에 명문을 새기는 금문으로 시작하여 석문이 뒤를 이은 반면, 우리나라는 기적비(紀蹟碑)·탑비·묘비·묘지(墓誌) 등 돌에 새긴 석문이 주류를 이룬다. 금문으로는 종명(鐘銘)이나 불교 기물에 글자를 새기거나 입사(入絲)한 것들이 있다. 이들 금석문은 문헌 자료를 보충하고 서예를 연구하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금석문 (金石文)
금석문은 쇠붙이나 돌로 만든 비석에 새겨진 글자이다. 금석문을 토대로 다양한 학술적 탐구를 진행하는 것을 금석학이라고 한다. 금석문은 제작 당시 사람의 손에 의해 직접 이루어진 것이므로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역사 자료로 평가받는다. 중국에서는 청동기 등 쇠붙이에 명문을 새기는 금문으로 시작하여 석문이 뒤를 이은 반면, 우리나라는 기적비(紀蹟碑)·탑비·묘비·묘지(墓誌) 등 돌에 새긴 석문이 주류를 이룬다. 금문으로는 종명(鐘銘)이나 불교 기물에 글자를 새기거나 입사(入絲)한 것들이 있다. 이들 금석문은 문헌 자료를 보충하고 서예를 연구하는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서예는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조형예술이다. 한자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대인의 비석과 묘지, 목판서적의 글씨는 훌륭한 서예 자료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왕희지의 서풍이 유행했다. 고려 말에 조맹부의 송설체가 도입되어 조선 전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안평대군이 유명하다. 중기 이후에는 한석봉, 윤순, 이광사 같은 서예가가 있었고, 19세기에는 김정희가 추사체로 일가를 이루었다. 근대기 이후 직업적 전문서예가들이 생겨났고 광복 이후에는 한글 서예가 발전했다.
서예 (書藝)
서예는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조형예술이다. 한자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대인의 비석과 묘지, 목판서적의 글씨는 훌륭한 서예 자료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왕희지의 서풍이 유행했다. 고려 말에 조맹부의 송설체가 도입되어 조선 전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안평대군이 유명하다. 중기 이후에는 한석봉, 윤순, 이광사 같은 서예가가 있었고, 19세기에는 김정희가 추사체로 일가를 이루었다. 근대기 이후 직업적 전문서예가들이 생겨났고 광복 이후에는 한글 서예가 발전했다.
북한 평안남도 룡강군 해운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낙랑군의 비.
점제현 신사비 (秥蟬縣 神祠碑)
북한 평안남도 룡강군 해운면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낙랑군의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