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

대동여지도 / 단양, 청풍, 충주, 제천, 원주, 음성
대동여지도 / 단양, 청풍, 충주, 제천, 원주, 음성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
정의
충청북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제천시, 서쪽은 음성군, 남쪽은 괴산군, 북쪽은 강원도 원주시와 경기도 여주시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39′∼128°08′, 북위 36°47′∼37°12′에 위치한다. 면적은 983.67㎢이고 인구는 20만 791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12개 행정동(26개 법정동), 333개 행정리(136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다.

자연환경

옥천지향사(沃川地向斜)지역의 후대동기(後大同紀)의 조산운동으로 산맥이 생성된 이후, 중생대 말을 전후로 여러 차례의 숨곡운동과 단층운동을 통해 곳곳에 화강암이 관입되어 산맥을 이루고 있다. 동부는 태백산맥의 여맥인 구릉지대, 남부는 소백산맥, 북부는 차령산맥이 있어 대부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부는 충주분지를 이루고 있다.

북부에는 시루봉(732m)·천등산(天登山, 807m), 동부에는 지등산(地登山, 535m)·적보산(積寶山, 698m), 서부에 수레이산(679m)·보련산(寶蓮山, 764m)·국망산(國望山, 700m) 등 5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도처에 구릉의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북서부는 노령산맥의 잔구인 옥녀봉(玉女峰, 700m), 보련산이 연이어져 있어 대체로 남고북저의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남한강과 달천강 유역에 범람원과 자연제방이 발달되어 있다.

남한강이 강원도 오대산(五臺山, 1,430m)에서 발원하여 영월, 단양을 거처 충주호에 흘러들고 있다. 또, 달천(達川)이 속리산(俗離山)에서 발원하여 곡류하고, 충주시에서 북류하여 탄금대 부근에서 합류하면서 달천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요도천(堯渡川)이 가엽산(加葉山, 710m)에서 발원하여 신니면·주덕면을 지나면서 곳곳에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복성천(福城川)이 보련산(寶蓮山, 764m)에서 발원하여 앙성평야를 이루며 수레이산(679m)에서 발원한 봉황천(鳳凰川)과 한포천(漢浦川)이 노은평야를 이루고 천등산에서 발원하는 원곡천(院谷川)이 산척평야와 엄정평야를 형성하여 미곡을 비롯한 농업지대를 이루고 있다.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동량면의 일부, 살미면의 일부, 산척면의 명서동 등 총 3개 면, 13개 리가 수몰되었다. 그리하여 동량면·살미면 일대에는 많은 농경지가 수몰되게 되었다. 충주분지는 소백산맥의 연봉인 계명산(鷄鳴山, 775m)·남산(南山, 636m)·대림산(大林山, 680m)이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다.

내륙에 위치하여 대륙성 기후의 성격이 강하다. 연평균 기온 12.4°C, 1월 평균기온 -3.1°C, 8월 평균기온 25.6°C 이며, 연 강수량은 1,425㎜이다. 그러나 높새바람의 영향으로 여름철에 가끔 가뭄 피해가 심하다.

역사

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이 가주동·풍동·칠금동, 중앙탑면 탑평리, 금가면 월상리, 동량면 용교리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신석기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한 나라가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百濟)가 먼저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후, 5세기에 고구려(高句麗)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에 속해 국원성(國原城) 혹은 완장성(薍長城)으로 불렸다. 481년(장수왕 69)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충주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가 중앙탑면에 남아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6세기 중엽에 신라(新羅)의 영역이 되었는데, 551년(진흥왕 12) 우륵(于勒)이 가야에서 신라로 귀화하자 왕이 그를 대문산(大門山)에 살게 했다고 한다. 대문산은 탄금대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탔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557년(진흥왕 18)에 국원소경(國原小京)으로 삼고, 이듬해에는 귀족들의 자제와 6부의 세력있는 넉넉한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쇠뇌 등의 무기를 갖추어 이 지방의 방비를 튼튼하게 하였다.

673년(문무왕 13)에는 국원성을 쌓았다. 742년(경덕왕 1) 충주경(中原京)으로 삼고 통일신라의 중앙임을 표방했는데, 탑평리 7층석탑이 중앙탑으로 불리는 연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서예의 대가 김생(金生)과 학자 강수(强首) 등이 손꼽힌다.

940년(태조 23) 충주경을 충주로 개칭하고,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충주목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 10도(道)·12절도사(節度使)체제로 개편될 때 절도사가 파견되어 창화군(昌化軍)이라 했으며, 충주도(中原道)에 속하였다. 1012년(현종 3) 도사가 안무사(安撫使)로 바뀌었으며, 1018년 전국에 8목이 설치될 때 충주목이 되었다.

고려 중기에 5도·양계의 지방제도가 확립되면서 양광도(楊廣道)에 속했고, 괴주(槐州)·장연현(長延縣)·음성현(陰城縣)·청풍현(淸風縣) 등을 속현으로 거느렸다. 1254년(고종 41)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김윤후(金允侯) 등의 의병군이 충주성 싸움에서 야고(也古)가 이끄는 적병을 크게 무찔렀기 때문에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관내 다인철소(多仁鐵所)가 또한 몽골군을 물리친 공으로 1255년 익안현(翼安縣)으로 승격되었다. 1281년(충렬왕 7)에는 국원성을 개축하면서 초석에 연꽃무늬를 조각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예성(蘂城)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으며, 태원(太原)이라고도 하였다.

1395년(태조 4) 한양천도와 동시에 양광도의 일부가 경기에 이속되면서 충청도의 계수관(界首官)이 되었다. 1449년(세종 31)에 관찰사가 충주목의 판목사(判牧事)를 겸직하게 했다가 곧 폐지되었다. 1458년(세조 4)에는 충주진(忠州鎭)으로 바뀌고, 영춘·단양·제천·청풍·괴산·음성·연풍 등 7개 군현의 군정을 관할하였다.

1550년(명종 5) 유신현(維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567년 충주진영으로 회복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 관군을 이끌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쳐 왜군과 대적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사하였다. 그러나 조웅(趙熊) 의병군의 항전은 활발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이곳 출신 유인발(柳仁發)이 역적으로 주살되면서 충원현(忠原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충주목으로 복구되는 등 이후 1764년(영조 40)까지 7차례에 걸쳐 강등과 복구를 거듭하였다.

역대실록을 보관하는 4대사고(四大史庫)의 하나인 충주사고가 동량면에 있는 개천사(開天寺)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이곳 출신 임경업(林慶業)이 공을 세웠다.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명성황후(閔妃)가 장호원으로 피난 와서 한동안 머물렀다. 1895년(고종 32)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관찰부(觀察府)로 승격, 관찰사가 파견되어 충청북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1908년 도청이 청주로 이전되고, 충주는 군청소재지로 되었다. 1914년 서부의 8면을 음성으로, 남부의 2면을 괴산으로, 동부의 1면을 제천으로 이속시켰으며, 1931년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 충주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충주군이 중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958년에는 충주비료공장이 건설되어 농산물 증산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활석·제분공장이 세워져 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3년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 이류면 하문리가 괴산군에, 신니면 광월리 일부가 음성군에 이속되었다.

1985년에는 충주다목적댐이 완공되어 농업·공업·식수원이 됨은 물론, 호반의 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중원군이 충주시에 통합되어 새로운 충주시가 되었다. 2005년 4월 1일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유물·유적

선사 시대 유적으로는 산척면 명서리, 동량면 하천리·지동리에서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민무늬 조각 및 집자리터와 초기 철기 시대의 유물이 충주댐 건설로 인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특히 동량면 조동리 강가에서는 1996년∼1997년의 발굴 조사과정에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임이 확인되었는데, 대표적인 유적으로 충주 조동리 유적(충청북도 기념물, 2002년 지정)·충주 조동리 고인돌(충청북도 기념물, 2001년 지정)가 있다.

충주를 관류하는 남한강변은 주로 이 시대의 유적이 많다. 우륵의 전설이 깃들고 있는 탄금대의 탄금대토성을 중심으로 일대가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로 조사되고 있다. 그리고 신니면 견학리 토성(見鶴里土城)에서는 뗀석기와 민무늬토기 조각이 발굴조사되고 있다.

고분유적으로는 삼국시대의 중앙탑면의 충주 누암리 고분군(사적 제463호)을 비롯, 직동·용관동·신니면 마수리, 엄정면 용산리 등 시 주변의 구릉지대에 많은 고분군이 있으며, 간석기와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산성으로는 직동의 충주 남산성(충청북도 기념물, 1980년 지정)을 비롯하여 살미면 향산리의 대림산성(충청북도 기념물, 1999년 지정), 용관동 산성, 중앙탑면 장천리의 장미산성(사적, 1997년 지정), 노은면의 천룡성(天龍城, 일명 보련산성)과 수안보면 미륵리의 달마산성(達馬山城) 등이 있다. 또, 종림동에 심항산봉수(心項山烽燧)와 살미면 향산리의 대림산봉수, 수안보면의 마골점봉수(馬骨岾烽燧)와 주정산 봉수(충청북도 기념물, 2000년 지정), 이류면의 마산봉수가 있어 지리적인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성내동에는 1870년에 읍성을 개축하고 세운 충주 축성사적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가 있다. 중앙탑면 용전리에는 충주 고구려비(국보, 1981년 지정)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지현동 대원사에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단월동의 단호사 철조여래좌상(보물, 1969년 지정)·충주 단호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이 있다.

중앙탑면의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2004년 지정),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을 비롯, 창동리에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수안보면 미륵리의 충주 미륵대원지(사적, 1987년 지정)에는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1963년 지정)·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충주 미륵대원지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충주 미륵대원지 석등(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과 당간지주 등이 있다.

신니면 문숭리에 숭선사지(사적, 2003년 지정)와 당간지주가 있으며, 금가면 유송리에는 김생사지(충청북도 기념물, 2000년 지정), 원평리에는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과 삼층석탑이 있다. 동량면 하천리에는 정토사 법경대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가 있으며, 엄정면 추평리에 추평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괴동리에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보물, 2007년 지정)이 있다.

앙성면 모점리에 오갑사지 석조여래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이 있으며, 소태면 오량리의 청룡사지에는 청룡사지 보각국사탑(국보, 1979년 지정)·청룡사 보각국사탑비(보물, 1979년 지정)·청룡사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보물, 1979년 지정)·청룡사 위전비(位田碑)와 사리탑·부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절터와 석탑·석불상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교현동의 충주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중앙탑면 창동리에 누암서원, 금가면 하담리에 하강서원, 이류면 문주리에 충주 팔봉서원(충청북도 기념물, 2003년 지정) 등이 있다. 관아 유적으로 성내동에 충주 청녕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충주 제금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산고수청각(山高水淸閣) 등이 있다.

사우로는 칠금동의 탄금대(명승, 2008년 지정)에도 양진명소사(楊津溟所祠)가 있었다. 이 밖에 단월동에 임경업(林慶業)장군의 사당인 임충민공 충렬사(사적, 1969년 지정)와 용관동에 한남군사(漢南君祠), 교현동에 임진왜란 때 향교의 위패를 지킨 석부(石夫)·석감(石鑑)을 모신 호성사(護聖祠), 권언(權躽)을 배향한 금능동의 양정공사(襄靖公祠)와 신니면 신청리의 박팽년 사당(충청북도 기념물, 1978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금가면 오석리에 충훈사와 충주 이수일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78년 지정), 풍동에 임경업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가 있으며, 주덕읍 사락리의 충주 이상급 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엄정면 괴동리의 경종태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과 가춘리의 낙선군 태실비(樂善君胎室碑)가 있다.

엄정면 미내리에 충주 윤양계 고택(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살미면 용천리에 최응성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주덕읍 덕련리에 삼련정(三蓮亭), 금가면 하담리에 모현정(慕賢亭)이 있다.

또, 이류면의 충주 문주리 요지(충청북도 기념물, 1988년 지정), 수안보면의 충주 미륵리 요지(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가 있다.

중앙탑면 탑평리에 이수일 진무공신교서 및 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살미면 세성리의 임경업 쌍성각과 임경업 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노은면 가신리의 유백증 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지현동의 양성이씨 종중에 삼탄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무술인 택견(국가무형문화재, 1983년 지정)과 신니면 마수리에 충주 마수리 농요(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994년 지정), 중앙탑면 창동리에 충주 청명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993년 ), 탑동리에 자양금(충청북도 민속문화재, 1994년 지정)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정려와 영정 및 신도비 등 유적·유물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 계명산(鷄鳴山) 아래에 창건한 충주향교가 있다. 이 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29년에 현 위치인 교현동으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그 후 다시 소실된 것을 1897년에 다시 세우고, 1936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외에 1582년 이류면 문주리에 팔봉서원(八峰書院)이 설립되고 1672년에 사액되었다. 1695년 중앙탑면 창동리에 누암서원(樓巖書院)이 설립되어 1702년에 사액되었다. 1786년 금가면 하담리에 하강서원(荷江書院)이 설립되었다.

이들 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모두 철폐되었으나, 그 뒤 누암서원과 하강서원은 복원되고 팔봉서원은 유허지만 보존되고 있다. 또한 1697년 단월동에 임경업장군의 사당인 충렬사(忠烈祠)가 건립되고 1978년에 성역화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5년에 충주공립소학교가 설립되어 한문만 가르치다가 1905년에 충주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는데, 현 교현초등학교의 전신이다. 1908년에는 엄정면 미내동에 사립 명신학교(明新學校)가 설립되어 운영되다가 1915년에 용산리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는데, 현 엄정초등학교이다.

중학교로는 1915년에 간이농업학교가 설립되었는데, 현 충주농업고등학교의 전신이다. 1940년에 충주공립중학교가 설립되었는데, 뒤에 분리되어 현재 충주중학교와 충주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62년에 충주공업초급대학이 설립되어 발전을 거듭, 충주산업대학교로 되었다가 1999년에 충주대학교로 되었다. 이후 충주대학교는 한국교통대학교 충주캠퍼스가 되었다.

1980년에는 건국대학교의 분교가 단월동에서 개교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8개교, 중학교 17개교, 고등학교 11개교, 특수학교 3개교, 한국교통대학교 충주캠퍼스,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와 강동대학교 충주캠퍼스가 있다.

이 밖에 충주박물관·충주문화원·예총 충주지부가 있다. 또한 1978년에 예성문화연구회가 발족하여 충주 지역 문화유적의 연구와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한국전통택견회와 택견전수관이 있어 택견의 육성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또, 가야금의 전수를 위한 우륵당(于勒堂)이 1987년에 개관되어 이 지역의 문화 발전에 한몫을 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목계(牧溪)의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목계줄다리기는 정월보름날부터 시작하여 2월 초순경까지 지속된다. 처음에 아이들이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아기줄다리기를 하다가 나중에 어른줄다리기로 이어져 승부를 겨룬다.

어른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은 길이가 100여 미터나 된다. 동편에서 수줄을, 서편에서 암줄을 각각 준비하여 편기(便旗)를 앞세우고 구군복을 입은 편장을 태운 채 농악대를 대동하고 목계 강변에 나와 줄을 당긴다. 줄다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별신제(別神祭)를 지내고 난장(亂場)을 연다. 목계는 옛날 나루터였던 곳으로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이때가 되면 구경꾼이 구름처럼 모인다.

줄다리기 도중 동서 양편에서 이웃마을에 청병(請兵)을 하면 이웃마을 사람들이 농악대를 앞세우고 원군(援軍)을 와서 나중에는 줄꾼이 수백 명씩이나 된다. 여기서 이기는 편에는 풍년이 들고, 지는 편에는 흉년이 든다고 믿어 양편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최선을 다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은 강변에 그대로 두었다가 장마가 질 때 마을사람들이 모여 강물에 띄워 보내는데 이를‘용 띄운다’고 한다. 목계줄다리기는 3년마다 거행되었으나 20년 전에 중단되었다가 최근 들어 재연하고 있지만, 규모와 내용이 많이 축소되었다. 이 밖에 아이들 놀이로 장치기가 있다.

이 고장의 동제로는 산신제와 서낭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노은면 대덕리의 산신제는 정월 14일 밤에 생기복덕에 맞는 유사(有司)를 선정하여 당집에서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제물로 쓰는 술과 메는 제전(祭田)에서 경작한 쌀로 만든다.

그런데 이 쌀은 거름을 쓰지 않으며 손으로 꺾어 나뭇가지로 훑고 나무절구와 나무공이로 찧은 것만을 썼다 하나 지금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제기(祭期) 동안 유사와 동민들은 근신하면서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

엄정면 목계리의 서낭제는 정월 5일 당골무당이 광대와 악사를 데리고 와서 광대놀이를 하여 돈을 모은 뒤, 7일에 제주집에서 안반(案盤)굿을 하고, 10일 목계나루에 있는 부군당에서 당굿으로 거행하였다. 그러나 당굿으로 행하는 서낭제는 30여 년 전에 중단되고 지금은 서낭각시의 그림이 있는 부흥당에서 제주가 제물을 차려놓고 유교식 제사를 지낸 뒤 소지(燒紙)를 올리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자린고비 등의 인물전설과 암소바위·명마재 등에 얽힌 지명전설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충주에 한 구두쇠가 살았는데, 어느 날 그는 파리 한 마리가 장독대에서 된장을 빨아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장독뚜껑을 덮고 그 파리 다리에 묻은 된장을 되찾으려고 파리를 쫓아갔다.

그런데 도중에 잠자리가 파리를 잡아먹는 바람에 이번에는 잠자리를 쫓게 되었는데, 대가미못 부근에서 잠시 놓치고 어정거렸다 하여 이곳을 어정이들이라 부르게 되었고, 다시 수원의 어떤 마을까지 쫓아갔다가 그만 놓치고 어정거리다 돌아왔다 하여 그 마을이름이 어정개가 되었다 한다.

그 구두쇠는 뒤에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서 그 덕으로 비(碑)가 세워졌고, 그 비의 이름이 자인고비(慈仁古碑)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자린고비라 부르게 되었다.

「암소바위전설」 역시 한 구두쇠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한 구두쇠가 부인이 먹는 밥마저 아까워서 굶기니 배가 고픈 부인은 외양간의 쇠여물을 마시고 그만 몸이 부어올랐다. 이를 너무 먹어 살이 쪘다고 오해한 구두쇠는 부인을 쫓아내고 새 장가를 들었다.

새 부인은 먹지도 않고 살도 찌지 않아 만족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광의 쌀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구두쇠가 몰래 살펴보니 새 부인은 남편이 안 보이자 흰쌀로 밥을 한 솥 해먹고는 계속 변소만 들락거렸다. 그제야 구두쇠는 쫓아버린 옛 부인이 생각나서 찾아가 보니 이미 옛 부인은 암소바위가 되어 있었다.

명마재에는 아기장수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어떤 부부가 아이가 없어 산신에게 백일기도를 드리고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아기는 겨드랑이 밑에 비늘이 달려 있는 장수아기였다.

그러나 장수아기가 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를 들은 부부가 겁이 나서 아이를 생매장하자 그 뒤 백일이 되는 날 앞고개에서 흰말이 나타나 크게 울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그 뒤부터 이 고개를 명마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밖에도 「수리산전설」·「검은들전설」, 좋은 사람에게는 술이 나오고 나쁜 사람에게는 흙탕물이 나온다는 「주정들전설」, 중을 괄시한 부잣집이 연못이 되었다는 「장자늪전설」, 이여송이 혈을 찔렀다는 「투구봉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의 민요는 논농사 노동요가 유명하여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모찌는노래」는 중중모리로 선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절우자 절우자 이못자리를 절우자.”라는 사설로 받는데 느린 가락이다.

들어보면, “……교민화식 한연후에/ 농사밖에 또있는가/ 절우자 절우자/ 이못자리를 절우자/ 춘하추동 사시순환/ 우리농부들 위함일세/ 절우자 절우자/ 이못자리를 절우자…….”와 같다. 모심기노래는 「아랑성」이라는 느린 세마치 장단인데 8장단으로 “아라리야 아라리요/아리랑 어헐사 아라성아”라는 후렴을 수반한다.

들어보면, “높은들엔 밭을치고/ 깊은들에는 논을쳐서/ 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어헐사 아라성아/ 오곡잡곡에 농사를지니/ 해마다년년이 풍년만들어라/ 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어헐사 아라성아// 여기꽂고 저기꽂고/ 사오배축짜리루 꽂아만주소/ 아라리야 아라리요/ 아리랑 어헐사 아라성아…….”라고 부른다.

「아시김매기노래」는 긴모리/중모리/자진모리 등 여러 가지 가락으로 앞소리를 메기면 뒷소리꾼은 ‘에이여라 방아호’라는 사설로 받는다. 「이듬김매기노래」는 「대허리」라고도 하며 두 장단의 선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두 장단의 ‘어와금실 대허리야’라는 비교적 씩씩한 느낌을 주는 가락으로 받는다.

「아시김매기노래」를 들어보면, “……일년 중에 장한것은/ 에이여라 방아호/ 농사밖에 또있는가/ 에이여라 방아호/ 국태민안 시화연풍/ 에이여라 방아호/ 요순성대 이아니냐/ 에이여라 방아호/ 올해도 풍년이들고/ 에이여라 방아호…….”처럼 한다. 이 밖에도 「물레질노래」·「회다지노래」·「말뚝박는노래」·「베틀가」·「시집살이노래」·「달풀이」·「숫자풀이」·「화투풀이」·「범벅타령」등 많은 민요가 전승되고 있다.

산업·교통

이 시의 토지이용 현황을 보면, 총면적 983.67㎢ 중 임야 624.75㎢, 논 83.68㎢, 밭 82.81㎢, 대지 24.03㎢, 과수원 16.54㎢ 등이다.

남한강과 달천강 유역의 충주평야는 미호평야와 함께 충청북도의 2대 평야로서 많은 미곡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요도천(堯渡川)과 복성천(福城川) 및 한포천·원곡천(院谷川) 등에는 유역평야가 있어 논농사가 성하나, 부근의 선상지·구릉·산록에는 상전이나 과수원 등 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소·돼지·닭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한육우·젖소 등을 소규모로 사육하고 있다. 닭은 농가부업으로 사육하고 있으나, 충주시 부근에서는 대규모의 기업적인 양계가 행해지고 있다.

과실로는 사과·배·복숭아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충주지방은 사과 재배의 최적지로서 충청북도 제일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배는 남한강변의 칠금동·금릉동을 비롯한 달천강 연안의 과수원에서 사과와 함께 재배하고 있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인삼 등을 재배하고 있다.

잎담배는 괴산군·음성군과 함께 전국적인 잎담배의 주산지를 이루고 있고 인삼도 1960년대 이후 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임산물로는 밤·대추·표고버섯·산나물 등을 많이 생산한다.

내수면 어업은 살미면과 동량면에서 어류를 주로 양식하고 있다. 광물로는 석회석·고령토·활석·규석 등을 생산하고 있다. 석회석은 단월동·안림동·목행동·이류면·주덕면·엄정면·산척면 둥지에서, 규석은 목행동·동량면에서 그리고 고령토는 살미면, 활석은 안림동 등에서 주로 생산하고 있다.

산업단지는 충주산업단지, 중원산업단지, 첨단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으며, 주덕농공단지, 가금농공단지, 가주농공단지, 용탄농공단지 등에서 다수의 사업체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관내의 상업활동은 과거 1·6일의 개시일인 신니시장과 수안보시장이, 3·8일이 개시일인 주덕장·노은장·엄정장, 2·7일이 개시일인 앙성장과 산척장, 4·9일이 개시일인 동량시장 등의 정기시장이 있었다.

그러나 충주시와의 교통이 편리하여 모두 폐시(閉市)되고 지금은 충주시에 5·10일이 개시일인 정기시장이 성내동과 충인동에 있고, 그 외 많은 상가와 상설시장 그리고 수산시장, 청과물 시장 등이 있어 충주시민은 물론 인근지방 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교통은 충주∼제천 간의 충북선과 국도 3호선, 19호선, 36호선, 38호선 그리고 지방도와 군도 등이 충주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뻗쳐 있어 육상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또한 여주에서 김천으로 이어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경기와 영남으로 잘 연결되어 있으며, 2015년에는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전 구간 개통하여 충주시를 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충주호 유람선을 이용한 단양과의 수상교통도 편리한 편이다.

관광

주요 관광지로는 수안보온천·칠금·충온온천과 능암온천 등이 있다. 수안보온천 지역에는 온천·미륵사지·스키장·숙박시설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또 부근에 조령관문과 월악산국립공원이 있어 훌륭한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수안보온천은 충청북도의 알프스라 별칭하는 조령산맥의 계곡에 위치한 온천으로 산수가 수려하고 조용하여 훌륭한 휴양지가 되고 있다.

이 온천은 1925년에 발견되었는데 용출량이 많고 피부병과 부인병에 특효가 있다는 국내 최양질의 수질을 자랑하고 있다. 온천을 이용한 숙박관광지로 조성되어 있고 최근에는 스키시설과 유락시설이 있어 스포츠, 휴식공간으로서의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수안보면 미륵리에는 미륵사지가 있고 월악산 송계계곡의 깨끗한 피서지로서 민박촌이 자리하고 있다. 식당 등의 간이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특산품, 특산음식 등을 즐길 수 있다. 조령관문은 옛 명남로의 관문으로서 주변 경치가 수려하여 관광과 등산을 겸할 수 있다. 그리고 부근에는 절경을 이루는 수옥폭포(漱玉瀑布)가 있다.

칠금 지구에는 탄금대를 중심으로 문화관·충혼탑·소래비·육각정·열두대·대흥사(大興寺) 등의 명승고적과 아름다운 경치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충주호·호암지·충렬사 등도 훌륭한 명승지가 되고 있다. 앙성면 돈산리의 충온온천과 능암리의 능암온천은 내륙형 관광지로서 충주와 단양을 연결하는 내륙호반의 연계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비내섬·할미바위·목계솔밭·장미산성·조정댐·골프장 등 자연 관광자원과 역사, 문화관광자원, 각종 위락시설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때문에 상호연계 이동이 편리한 충주 근교 관광권이 되고 있다.

특히 충주호는 동량면 조동리와 충주시 종민동의 남한강에 건설된 다목적댐으로서 충주∼단양까지 유람선이 왕복 운행하고 있다. 따라서 단양팔경을 비롯한 경승지를 수상여행으로 즐길 수 있는 내륙 최대의 호반관광지를 이룬다. 이 외에도 충주∼제천 간의 천등산의 박달재[朴達峙]와 박달계곡은 훌륭한 자연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읍·면
  1. 주덕읍(周德邑)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48.56㎢, 인구 5,67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양리이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주위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주류면(周柳面)이라 하였다.

망청·신대 등 21개 리(里)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덕면(德面)의 상류·하류 등 21개 리와 신니면의 수청동 일부를 병합, 주류와 덕면의 이름을 따서 주덕면이 되었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중원군 주덕면에서 충주통합시 주덕면이 되었다. 북부는 높은 산지가 있고 남동부에는 어래산(御來山, 380m)이 있다. 중앙부는 요도천이 서쪽에서 동류하여 장록·창전·신양 일대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요도천 상류에는 많은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식량작물로는 미곡을 위시하여 잡곡을 생산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잎담배·양잠이 유명하다. 가축으로 한육우·산양·돼지·닭·오리·개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는데 특히, 한육우·돼지·오리 등은 관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하고 있다.

2개의 비금속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2만 2200M/T의 석회석을 생산하고 있다. 조립금속·기계장비,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비금속광물, 식료품·담배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면부 중에서는 가장 제조업이 활발하다.

교통은 충북선의 주덕역과 충주∼청주 간과 충주∼서울 간의 국도 등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사락리의 충강공 이상급신도비, 삼청리의 효자문·단군전 등이 있다. 삼청리의 어래산은 경치가 아름다운 명산으로 고려 말 배극렴(裵克廉)이 이 산에서 은거했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세 번이나 찾아와 공사를 의논하였다 한다.

신양리(新陽里)·창전리(倉田里)·대곡리(大谷里)·삼청리(三淸里)·신중리(新中里)·화곡리(花谷里)·사락리(社樂里)·장록리(長菉里)·덕련리(德蓮里)·당우리(堂偶里)·제내리(堤內里)등 11개 리가 있다.

  1. 중앙탑면(中央塔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09㎢, 인구 2,79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탑평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금천면(金遷面)이라 하여 상구암·하구암 등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흥면(可興面)의 16개 리와 복성면(福城面)의 죽암리 일부를 병합, 가금면이라 하였다. 2014년에 가금면이 중앙탑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앙성면·노은면과의 경계에 무쇠봉(371m), 서부에 을궁산(乙宮山, 394m) 등이 솟아 있다. 동부에는 남한강이 면계를 이루면서 북류하여 다시 서류하면서 가흥리와 장천리 일대에는 범람원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산지가 많아 두류·서류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으나, 시의 근교농업지대로서 배추·무·호박 등의 채소류와 잎담배·고추 등의 특용작물 재배도 성하다.

장천리 부근의 남한강에는 충주수력발전소의 보조댐이 건설되어 있다. 가축으로는 닭·돼지·한육우·산양·개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나무·가구업체, 조립금속·기계장비, 식료품·담배 등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복계대교와 앙성경계간의 국도와 탄금대교∼노은대교 간의 지방도, 가흥삼거리∼이류면 경계에 군도가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남한강변에 위치, 고대로부터 일찍이 하항취락이 발달하였다. 가흥리는 옛 조운의 가흥창(可興倉)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남한강 수상교통의 요지였다. 문화유적은 탑평리의 중앙탑, 용전리의 고구려비, 창동리의 마애불·오층석탑·누암서원, 봉황리의 마애불상군, 누암리의 고분군, 장천리의 장미산성 등이 있다.

창동리의 청금산장은 명승지로 유명하며, 장천리의 목계솔밭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유원지이다. 탑평리(塔坪里)·가흥리(可興里)·하구암리(下九巖里)·누암리(樓巖里)·봉황리(鳳凰里)·장천리(長川里)·용전리(龍田里)·창동리(倉洞里) 등 8개 리가 있다.

  1. 금가면(金加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3.78㎢, 인구 4,24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촌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가차상면(加次上面)이라 하여 마산·휴암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생면(金生面)의 19개 리를 병합하여 금가면이 되었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의 통합에 따라 충주 통합시 금가면이 되었다.

도촌리의 태고산(太古山, 186m)이 가장 높은 정도로 비교적 저평한 지형이며, 남한강의 지류인 대전천(大田川)이 중앙부를 동쪽에서 서류하고 있어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비롯, 배추·양배추·오이 등의 채소류와 과실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참깨 등을 생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개·오리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는데, 특히 오리는 관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하고 있다.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비금속 광물, 조립금속·기계장비, 식료품·담배 등의 제조업에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 도로는 동부는 충주∼제천 간의 국도가 있고, 서부는 남북으로 도로가 관통하여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하담리의 하강서원·모현정, 오석리의 이수일의 사우와 신도비, 유송리의 김생의 사지와 제방 등이 있다. 하담리(荷潭里)·도촌리(島村里)·매하리(梅下里)·원포리(遠浦里)·오석리(梧石里)·사암리(沙巖里)·잠병리(岑屛里)·유송리(遊松里)·문산리(文山里)·월상리(月上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노은면(老隱面)

시의 서단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61.81㎢, 인구 2,47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연하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노은현(老隱縣)의 이름을 따서 노은면(老隱面)이라 하여 법동·대덕 등 24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흥면(可興面)의 팔송리 일부지역을 편입하였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중원군 노은면에서 충주 통합시 노은면이 되었다.

동부에 을궁산(乙宮山, 394m), 서부에 원통산(怨慟山)·행덕산(行德山, 447m), 남부에 웃고개·능안고개·우리재·질마루재, 북부에 승대산(僧代山, 650m)·국망산(國望山, 770m)·보련산(寶蓮山, 764m)·국사봉(國師峰) 등이 솟아 있다. 중앙부는 한포천(漢浦川)이 서쪽에서 동류하여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한포천의 상류의 대덕리에는 대덕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중심으로 두류·잡곡 등이고 특용작물로는 참깨·잎담배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닭·개·면양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비금속 광구 2개소가 가행되어 약간의 고령도를 생산하고 있다. 섬유·의복·가죽,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조립금속·기계장비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로는 충주시∼음성군 왕장리 간과 앙성면∼신니면 간에 지방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명승지로는 수용리에 천룡폭포(天龍瀑布)가 있다. 연하리(蓮河里)·법동리(法洞里)·안락리(安樂里)·대덕리(大德里)·가신리(佳新里)·문성리(文城里)·신효리(新孝里)·수룡리(水龍里) 등 8개 리가 있다.

  1. 동량면(東良面)

시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09.34㎢, 인구 4,1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조동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구한말에 동량곡(東良谷)이라 하여 운교·용대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7개 리로 개편하였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되어 충주통합시 동량면이 되었다.

북부 면계에 인등산(人登山, 667m)·토위산(兎危山, 780m), 남부에 지등산(地登山, 535m)·관모산(冠某山, 647m)·부대산(富大山, 628m)·주봉산(珠峰山, 642m)·사우앙산(四雨央山) 등이 솟아 있다. 동부에는 제천천이 남류하여 남한강에 흘러들고 있으나, 산지가 많다. 서부는 남한강 유역에 범람원이 크게 발달하고 있다.

조동리와 충주시 종민동간의 충주다목적댐이 건설되어 한강 홍수의 조절과 함께 각종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고 훌륭한 호반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두류·서류 등이고 특용작물로는 들깨·참깨·잎담배 등의 재배가 성하다.

가축으로는 한육우·돼지·개·닭·꿀벌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고 관내에서 가장 많은 29척의 어선을 보유하고 있다. 광산물로는 연간 1만 5900M/T의 규석을 생산하고 있다. 섬유·의복·가죽, 비금속광물 등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서부면계에는 충북선의 동량역이 있고 2차 포장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나 동부는 산지가 많아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하천리에는 옛 정토사가 있었던 문천산(門天山)을 중심으로 주위에 경치가 뻗어난 개천팔경(開天八景)의 경승지가 있다. 정토사에는 법경대사자등탑비가 있었으나 최근 옥녀봉 산록지대로 이전하여 보존되고 있다. 이곳에 있었던 홍법국사 실상탑 외 탑비는 1915년에 서울 경복궁으로 옮겼다.

조동리(早洞里)·화암리(花巖里)·하천리(荷川里)·용교리(龍橋里)·대전리(大田里)·손동리(遜洞里)·지동리(紙洞里)·사기리(沙器里)·명오리(鳴梧里)·서운리(瑞雲里)·포탄리(浦灘里)·함암리(咸巖里)·호운리(好雲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산척면(山尺面)

시의 동부단에 위치한 면. 면적 78.35㎢, 인구 2,6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강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천등산(天登山)이 있으므로 산척면이라 하여 정암·방대 등 3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5개 리로 개편했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충주 통합시 산척면이 되었다.

중앙부에 천등산(807m)이 솟아 있고 남쪽 동량면과의 경계에 인등산(667m)·부산(婦山, 780m)·용천산(龍天山, 293m)이 솟아 있고, 동부에도 많은 산지가 있다. 동부에는 제천천이 남류하고 있으나, 평야가 거의 없다. 서부는 영덕천(永德川)의 지류가 서류하여 산간분지의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두류·잡곡 등이고 특용작물로는 참깨·잎담배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육우·돼지·닭·꿀벌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광산물로는 연간 1만M/T의 석회석을 생산하고 있다. 섬유·의복·가죽, 비금속광물 등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로는 서부에 충북선의 삼탄역이 있고 서부와 동부에 충주∼제천 간의 국도가 있다. 삼탄역에서 백운면으로 가는 충북선에는 도내에서 가장 긴 터널이 있다. 명서리에는 삼탄(三灘)유원지가 있다. 삼탄은 광청소 여울, 소나무 여울, 따개비소 여울를 말하는데, 제천천이 심산유곡을 굽이굽이 돌면서 생긴 여울이다.

1958년 목행과 봉양 간의 충북선의 연장 개통으로 유원지로서 개발되었다. 빼어난 경관으로 봄·여름·가을에 피서객과 소풍객이 끊이지 않는다.

박달재로 유명한 천등산과 인등산, 지등산은 나란히 있어 이것을 3등산이라 부르고 있다. 제천시 백운면 평동을 중심으로 제천 쪽이 발달재이고 충주쪽으로 가는 곳이 다릿재인데, 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이며 천등산의 박달재 골짜기는 유명하다.

송강리(松江里)·영덕리(永德里)·명서리(明西里)·석천리(石川里) 등 4개 리가 있다.

  1. 살미면(乷味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91.55㎢, 인구 2,20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세성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살미곡(乷味谷)의 이름을 따라 살미면이라 하여 목벌·문지 등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등면(柳等面)의 팔봉리 일부를 병합했고 목벌리 일부를 충주시 중민동에 이속시켰다. 1956년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이속되었고, 1995년 도농복합으로 충주통합시 살미면이 되었다.

북서쪽의 충주시 단월동과의 경계에 남산(南山, 636m), 서단 부근의 두룽산(459m) 등이 솟아 있으며 대체로 산지가 많다. 신당의 달천강이 동북으로 흘러 남한강에 유입하고 충주의 달천강이 서북단으로 흘러 충주시 서단의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충주댐의 건설로 내사동·문화리·신당리·무릉동·재오개리·목벌리·신매리 등 7개 리와 757가구가 수몰되고 4,431명의 주민이 이주하여 관내에서 가장 많이 수몰되었다. 충주호에 인접하고 있어 소형어선 36척을 보유, 어업을 하고 있다. 동양활석광업소, 덕암광업소 등 3개의 비금속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고령토 9,600M/T, 석회석 1,198M/T 등을 생산하고 있다.

남부에는 동서로 충주∼경상북도 문경 간의 국도 3호선이 통과하고 있다. 경승지는 공이동의 암소바위(雌雄岩石)와 향산리의 노루목 등이 있다. 암소바위는 괴곡(槐谷)의 2개의 큰 바위가 계곡을 가로막고 있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경승지가 되고 있다. 노루목은 달천이 대림산 서쪽의 절벽을 끼고 도는 곳의 1㎞ 정도의 절벽이 있는 유원지이다.

문화유적은 용천리의 최응성 고가, 문강리에 탁영대, 신매리의 입석, 내사리의 부도 등이 있다. 함월정은 함월 최응성(崔應聖)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서 무릉동에 있었으나 충주호에 수몰되어 1983년 용천리로 옮겨 복원했고 염선재(念善齋)도 함께 이전하였다.

세성리(洗星里)·문화리(文化里)·재오개리(才五介里)·무릉리(武陵里)·신당리(新堂里)·공이리(公耳里)·내사리(乃沙里)·용천리(龍川里)·향산리(香山里)·설운리(雪云里)·신매리(新梅里)·문강리(文江里)·토계리(土界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수안보면(水安堡面)

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73.40㎢, 인구 3,36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온천리이다. 본래 연풍군 지역으로 고사리면(古沙里面)이라 하여 미륵·석문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수회면(水回面)의 6개 리를 병합, 고구려 때의 연울현의 옛 이름인 상모현(上芼縣)의 이름을 따서 상모면이라 하여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이후 1963년 중원군에 편입되었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의 통합으로 충주통합시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4월 1일에 상모면을 수안보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소백산맥의 험준한 산세의 영향을 받아 지형이 험준한 편이다. 동남부는 신선봉(神仙峯, 966m)·마개봉(馬開峰, 940m)·포암산(布巖山, 961m)·소조령(小鳥嶺) 등이 연이어 있고 북부와 북서부는 완만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소조령과 신선봉을 분수령으로 하는 석문천(石門川)이 수안보의 중심부를 지나 오가천(五街川)에 합류되어 원천(遠川)을 이루면서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이 산지이고 수회리, 문강리 일대에는 다소 넓은 평야가 있을 뿐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위시하여 잡곡을 생산하고 있고 축산물로는 면양·개·닭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임산물로는 관내에서 산나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3개의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1,400M/T의 석회석을 생산하고 있다.

도로는 충주∼경상북도 문경 간의 국도와 수안보∼미륵리 간의 지방도, 온천∼장연 간, 수회∼문강 간의 군도 등이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온천리의 수안보온천은 무색투명한 유황라디움성 온천수가 용출하는 국내 제일의 온천이며 부근에는 명승고적이 많아 많은 관광객이 찾는 휴양보양지이다.

문화유적은 미륵리의 미륵사지에는 석불입상·오층석탑·석등·삼층석탑 등이 있고 부근의 만수계곡은 유원지로 유명하다. 온천리(溫泉里)·안보리(安堡里)·화천리(花泉里)·사문리(寺門里)·미륵리(彌勒里)·고운리(古雲里)·중산리(中山里)·수회리(水回里) 등 8개 리가 있다.

  1. 소태면(蘇台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3.00㎢, 인구 1,9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량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소탱이골의 이름을 따라 소태양면(蘇台陽面)을 줄여 소태면이라 하여 율현·덕산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이후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중원군 소태면이 충주통합시 소태면으로 되었다.

북부에 국사봉, 남부에 꾀꼬리봉·응주산(鷹住山, 336m), 서부에 약수봉(藥水峰, 352m)·청계봉(淸溪峰)·향로봉(香爐峰)·응봉(鷹峰), 중앙부에 흑봉산(黑峰山) 등이 솟아 있어 대체로 산지가 많다. 구룡천(九龍川)이 구룡리에서 발원, 남류하여 야동을 지나 양촌리에서 남한강에 합류하고 있다. 하천유역에는 관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전개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두류·잡곡과 과일을 많이 생산하고 있고 특용작물로는 참깨·들깨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닭·오리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식료품·담배, 종이·인쇄·출판 등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제조업은 관내에서 가장 부진하다.

도로는 동부에 충주∼원주 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구룡리에서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 간에는 소티재가 있고 서부는 양촌리∼덕은리 간에 군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오량리의 청계봉에 청룡사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보각국사탑과 탑비·석등이 있다. 오량리(五良里)·복탄리(福灘里)·덕은리(德隱里)·주치리(周峙里)·야동리(冶洞里)·동막리(東幕里)·양촌리(陽村里)·중청리(中靑里)·구룡리(九龍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신니면(薪尼面)

시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59.77㎢, 인구 3,40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원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신니곡면(申尼谷面) 또는 신니면(申尼面)이라 하여 본리·수청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석면(薪石面)의 23개 리와 덕면(德面)의 석우리, 주류면(周柳面)의 창전 일부지역을 병합, 신석과 신니의 2개 면의 이름을 따서 신니면이 되었다.

1973년 광월리 무수마을을 음성군으로 편입시켰고 1981년 마수리 신석마을을 신석과 온수로 분구하였으며, 1992년에는 화안리의 산정, 산안의 2개 마을을 통합하였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중원군 신니면에서 충주통합시 신니면으로 되었다.

북부의 중앙에 화개산(花開山, 395m), 남부에 가엽산(加葉山, 710m), 서부에 수레이산(679m)·부용산(芙蓉山, 644m) 등이 솟아 있는데 서부와 남부는 매우 험준하다. 동부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고 요도천이 중앙부를 서남 방향으로 관류하여 원평·용원·마수·견학 등에는 큰 취락이 발달하고 있다.

요도천의 상류 송암리 부근에는 신덕저수지가 있어 몽리면적 1,040정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잉어·붕어·뱀장어가 많이 서식하여 낚시터로서도 유명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두류·잡곡 등을 생산하고 있고 특용작물로는 잎담배와 양잠의 재배도 활발하다. 가축으로는 한육우·돼지·개·닭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조립금속·기계장비, 비금속광물,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섬유·의복·가죽, 식료품·담배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충주∼서울간의 국도가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고, 용원리∼노은면 신효리 간의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원평리의 미륵석불·삼층석탑, 견학리에 토성, 신청리의 박팽년 사당, 문숭리의 당간지주와 용담사 미륵불 등이 있다. 용원리(龍院里)·화석리(化石里)·신청리(新淸里)·문숭리(文崇里)·문악리(文樂里)·광월리(廣越里)·송암리(松巖里)·선당리(仙堂里)·원평리(院坪里)·마수리(馬水里)·화안리(花顔里)·견학리(見鶴里)·모남리(毛南里)·대화리(大花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앙성면(仰城面)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100.24㎢, 인구 4,39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포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앙암면(仰巖面)이라 하여 말암·검단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복성면(福城面)의 23개 리를 병합, 앙암과 복성의 이름을 따서 앙성면이 되었다. 1972년 수해로 강촌리가 양촌리에 편입되었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중원군 앙성면이 충주통합시 앙성면으로 되었다.

서부의 3면 경계에 오갑산(梧甲山, 609m), 남부 면계에 승대산(僧代山, 650m)·국망산(國望山, 770m)·보련산(寶蓮山, 764m)·국사봉(國師峰)·무쇠봉(371m)이 솟아 있다. 앙성천이 지당리의 승대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본평리 동쪽에서 동쪽으로 꺾여 중앙부를 관통하고 능암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모점리의 앙암저수지와 지당리의 삼당저수지는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잡곡·두류 등이고 특용작물로는 참깨·잎담배의 재배가 성하다. 가축으로는 닭·개·꿀벌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는데 꿀벌은 관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하고 있다. 금속광 2개 광구가 가행되어 소량의 고령토와 중석을 생산하고 있다. 조립금속·기계,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비금속광물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충주∼서울 간의 국도가 남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고 용포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관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이문고개는 감곡면 경계의 국도 상에 있는 중요한 고개이다. 문화유적은 영죽리의 백년사, 마련리의 보광사·성복사, 능암리의 성주사 등이 있다.

용포리(龍浦里)·영죽리(永竹里)·강천리(江泉里)·단암리(丹巖里)·중전리(中田里)·목미리(木美里)·본평리(本坪里)·마련리(馬蓮里)·사미리(沙美里)·돈산리(敦山里)·능암리(陵巖里)·조천리(釣川里)·모점리(毛店里)·지당리(智堂里)·용대리(龍垈里) 등 15개 리가 있다.

  1. 엄정면(嚴政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49㎢, 인구 3,51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산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엄정사(嚴政寺)의 이름을 따서 엄정면이라 하여 노곡·능리 등 42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됨에 따라 중원군 엄정면에서 충주통합시 엄정면이 되었다.

북서부에 옥녀봉(玉女峰, 700m)·시루봉(732m), 서부에 빌미산·약수봉(藥水峰, 352m), 동부에 오청산(五靑山, 655m)·장병산(長屛山, 409m)·태고산(太古山) 등이 솟아 있다. 그리고 그 사이 Y자 모양의 원곡천(院谷川)이 남류하여 빌미산 서부에서 논강천(論江川)에 합류하고, 이것이 영덕천(永德川)에 흘러들어 남한강에 합류하고 있다.

영덕천과 원곡천 유역에는 평야가 많고 용산리에는 가장 큰 취락이 발달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두류·잡곡 등이고 특산물로는 참깨·잎담배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육우·닭·개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비금속광구 1개가 가행되어 연간 9,300M/T의 석회석을 생산하고 있다. 식료품·담배, 조립금속·기계장비, 나무·가구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로는 남부에 충주∼원주 간의 국도가 있고 중앙부는 남북으로 군도가 관통하고 있다. 목계리의 목계샛강과 두보소는 낚시터로 유명하고 목계나루 건너편의 목계솔밭은 뱃놀이와 피서를 즐기는 인근 주민의 유일한 휴식처이다.

문화유적은 괴동리의 억정사 대국사비·경종대왕의 태실과 태실비·백운암의 철불좌상, 추평리의 삼층석탑 등이 있다. 미내리에는 반공지사의 추모 전적비가 있다. 용산리(龍山里)·율릉리(栗陵里)·목계리(牧溪里)·논강리(論江里)·미내리(美內里)·괴동리(槐東里)·신만리(新萬里)·추평리(楸坪里)·원곡리(院谷里)·유봉리(柳峯里)·가춘리(佳春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대소원면(大召院面)

시의 남단부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62.04㎢, 인구 5,3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소리이다. 본래 중원군 지역으로 이안면(利安面)이라 하여 천동·금곡 등 6개 리를 관할하다가 그 뒤 천동리를 빼고 14개 리를 더해 1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등면(柳等面)의 18개 리를 병합, 이류면이라 하였다. 1973년 하문리를 괴산군 불정면으로 넘겨주었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을 통합함에 따라 중원군 이류면에서 충주통합시 이류면이 되었다.

북부는 비교적 낮은 산지이나 남부는 고양봉(顧養峰, 526m)·월은치(月隱峙, 328m) 등을 비롯하여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요도천이 중앙부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고 있어 대소·장성·만정 등 일대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두류 등을 생산하고 특용작물로는 잎담배·양잠을 많이 생산한다.

가축으로는 한우·돼지·닭·오리·개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고 임산물로는 산나물을 생산하고 있다. 광산물로는 연간 석회석 3만 4200M/T를 생산하고 있다. 관내에는 비금속광물, 섬유·의복·가죽, 조립금속·기계장비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도로는 북부에 주덕∼충주 간의 충북선과 국도가 있고 남부에는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살미면 물레산의 암벽이 뻗쳐 있는 300m의 기암괴석으로 된 문주리의 수주팔봉(水周八峯)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1963년 수주팔봉의 칼바위 일부를 잘라 만든 토계동의 물줄기는 훌륭한 폭포를 이루어 한층 더 관광 가치를 높이고 있다. 문화유적은 대소리의 마산봉수(馬山烽燧), 문주리의 석탑과 석불좌상이 있다.

대소리(大召里)·금곡리(金谷里)·장성리(長城里)·만정리(萬井里)·두정리(豆井里)·탄용리(炭用里)·매현리(梅峴里)·문주리(文周里)·검단리(檢丹里)·완오리(完五里)·본리(本里)·영평리(永坪里) 등 12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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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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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0)
충주시(www.cj100.net)
충청북도충주교육청(www.cbchj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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