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經學)
그는 1722년 신임사화에 종조부 창집(昌集)이 노론 네 대신의 한 사람으로 사약을 받아 죽고, 일가가 모두 유배되자 어머니의 유배 장소에 따라가 있으면서, ≪맹자≫와 이이, 송시열의 저서를 탐독했고, 1725년 할아버지가 신원(伸寃)된 뒤에도 시골에 파묻혀 학문에만 힘썼다. 당시 성리학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이간(李柬)의 낙론(洛論)을 지지하고 한원진(韓元震)의 호론(湖論)을 반대하기도 한 그는 ≪독서잡록(讀書雜錄)≫, ≪중용문답(中庸問答)≫, ≪중용강설(庸講說)≫, ≪미호강의(渼湖講義)≫, ≪미상경의(渼上經義)≫ 등의 경학 연구의 단행본을 남겼다. 서명의 나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원행의 경학은 무엇보다도 ≪중용≫ 위주라는 특색을 지닌다. ≪중용문답≫, ≪중용강설≫은 말할 것도 없고, ≪독서잡록≫도 역시 그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