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효산(曉山). 전라남도 무안 출신.
원각사에서 창극활동을 하던 명창 용안(用安)의 셋째 아들이다. 아홉살 때부터 가야금을 배웠으며,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金昌祖)에게서 전수받았다.
거주지를 대구로 옮겨 살면서 때때로 서울에 올라와서 협률사(協律社)와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참여하여 연주활동을 하고 축음기로 가야금산조 및 가야금병창을 취입하였다. 그때 박차경(朴且更)·최금란(崔錦蘭) 등 제자를 길렀다.
40대 후반에는 부산에서 살며 원옥화(元玉花)·김춘지(金春枝)·구연우(具演祐)·신명숙(申明淑) 등 여러 제자를 길렀는데, 김춘지는 뒤에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만년에는 불교에 심취하였고, 음악적으로 심화된 가야금산조를 지어 여러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김윤덕과 박귀희도 배운 일이 있으며, 그의 예술은 제자들에 의하여 널리 전승되어 가야금독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한다. 그가 연주한 가야금산조 및 병창은 축음기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