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로는 ‘와(蛙)’로 쓴다. 몸은 보통 굵고 짤막하며 네 다리가 발달하였는데, 특히 뒷다리가 발달하였으며 꼬리는 없다. 개구리가 되기 전의 올챙이[幼生]는 머리와 몸통이 둥글게 되어 있고 세쌍의 겉아가미와 긴 꼬리로 수중생활을 하는데, 성숙해지면 변태과정에서 제일 먼저 뒷다리가 생겨나고 다음에 앞다리가 생긴다.
꼬리와 아가미가 점차 없어지면 육지로 올라온다. 개구리는 삼첩기(三疊期) 초기에 나타나서 신생대에 들어서서 급격히 번성하였는데, 도롱뇽과 같이 석탄기와 이첩기에 번성하였던 경골어류(硬骨魚類)의 일종인 총기류를 조상형으로 보고 있다.
개구리는 양서류 중에서 가장 진화된 형질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목(目)에 비하여 다양한 생활형을 나타내며 지리적 분포도 넓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개구리는 두꺼비아목에 7과와 개구리아목에 4과가 있으며, 모두 2,000여종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두꺼비아목에 3과 5종과 개구리아목에 2과 6종이 있다. 이 가운데 개구리과에는 참개구리 · 금개구리 · 산개구리 · 아무르산개구리(좀개구리) · 옴개구리(송장개구리 · 네발꺽지)가 살고 있다.
(1) 참개구리: 대개 녹색과 연한 회갈색을 띠는데, 저지대의 강변 · 논 · 연못 · 초원 · 습원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여름철에는 고산의 1,000m에서도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 신장염 · 수종병, 배가 불룩하게 불러오르는 병, 그리고 산후보허 · 염발고 · 부스럼 · 소아발육부진 · 산후보품, 젖이 적을 때, 시적 · 각기종 · 소변불리 · 요통 등에 약재로도 사용되며, 실험동물로서도 많이 쓰인다.
(2) 금개구리: 참개구리와 비슷하나 몸의 등면이 녹색이며, 고막과 등 옆선에 있는 융기선은 연한 갈색을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 충청도 · 전라도 · 부산 · 제주도에 분포한다. 농촌에서는 닭의 사료로 이용한다.
(3) 산개구리: 등면이 흑갈색 또는 갈색으로 흑갈색의 불규칙한 무늬가 산재하고 있으며, 머리와 앞다리의 무늬는 엷은색이다. 산림이 우거진 계류의 돌 밑이나 물속에 낙엽이 쌓여 있는 속에서 동면하고, 먹이는 야간에 육상 곤충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산란은 3월말경에 한다. 전국 고산의 계류가 있는 곳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제주도에는 1,300m의 습원에 서식하고 있다.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구천동)에서는 경칩을 전후해서 산개구리들이 계류에서 물이 괴어 있는 논으로 올라와 집단번식을 하는데, 이때 논에 모여든 산개구리를 잡아 개구리죽을 끓여먹는 개구리천렵이라는 풍습이 있다. 근년에 와서는 겨울철만 되면 때를 가리지 않고 바위 밑에 동면하고 있는 산개구리를 잡아다 술안주로 하고 있다. 산개구리는 보호대책 없이 장소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남획되고 있으므로, 멸종이 우려되는 동물이다.
(4) 아무르산개구리: 몸의 길이가 25∼38㎜로 산개구리의 새끼같이 보인다. 몸의 색깔은 담갈색 또는 적갈색이고, 안비선 배쪽 가장자리에 흑색무늬가 있으며, 고막과 그 둘레에는 삼각형의 흑색무늬가 있다. 산란은 우리 나라의 개구리 가운데에서 가장 빨라, 봄이 되어 논에 얼음이 녹고 아침에는 살얼음이 얼 정도면 산란을 시작한다. 분포는 구북구계에 속하며, 경기도 · 전북특별자치도 · 경상남북도 · 강원도에 분포한다.
(5) 옴개구리: 몸의 길이가 40∼55㎜이다. 등면은 흑갈색 또는 어두운 회색이고 불규칙한 흑색무늬가 산재하고 있으며, 등 쪽의 피부에는 평행으로 배열된 단봉상(短棒狀)의 융기와 입상돌기(粒狀突起)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국에 분포한다. 1970년 이전에는 피부가 옴이 걸린 손등과 같이 보기가 흉칙하여 전혀 먹지 않았으나, 근년에 산개구리가 줄어들면서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개구리에 관한 기록은 일찍부터 문헌에 나타난다. 『삼국유사』 동부여조(東夫餘條)에는 해부루(解夫婁)가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를 얻어 길러서 태자를 삼았는데, 이 아이가 뒤에 동부여의 금와왕(金蛙王)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선덕여왕지기삼사(善德女王知幾三事)라는 이야기 속에도 개구리에 관한 언급이 있다. 즉, 선덕여왕이 옥문지(玉門池)에서 겨울에 개구리가 모여들어 우는 것을 보고, 여근곡(女根谷)에 적병이 침입한 것을 알아맞추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개구리는 그 모양이 노한 형체이어서 병사(兵士)의 상으로 해석되고 있다.
개구리에 관한 속담도 매우 많다. 어릴 적 생각을 못하는 사람에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하고, 견문이 좁은 사람을 가리켜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며, 앞 일을 위해 양보하는 경우에 ‘개구리 주저앉는 뜻은 멀리 뛰자는 뜻이라.’ 라고 한다.
또한, 개구리는 우는 소리가 시끄럽기로 유명하여 ‘각머구리 끓듯한다.’는 말이 있으며, 자나 깨나 글만 읽는 사람을 보고 ‘성균관개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구리에 관한 설화도 여러 종류가 전승된다. 부모의 뜻을 항상 어기기만 하다가 부모의 묘지를 물가에 쓰고 비만 오면 그 묘지가 떠내려갈까 운다는 「청개구리 전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 밖에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주민들이 잠을 못자게 되자, 고을 감사가 부적을 연못에 넣어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그치게 했다는 이야기가 해주지방에 「부용당(芙蓉塘) 전설」로 전해진다. 이러한 전설은 강감찬(姜邯贊)의 일화로 각처에서 전승되기도 한다.
또한, 개구리는 「꾀꼴이와 따오기의 노래자랑」이라는 이야기에서 재판을 맡은 황새에게 따오기가 바친 뇌물로 쓰여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가난한 선비가 벼슬 못하는 이유가 개구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무와지탄(無蛙之嘆) 설화」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동물담이 아닌 점복담으로 개구리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친구의 도움으로 점을 잘 친다는 명성을 얻게 되고, 그 영통력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손 안에 쥔 개구리를 알아내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개구리의 점복 설화」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이처럼 개구리는 울음소리, 형상 또는 명칭 등에서 설화의 풍부한 소재가 되고 있다. 민요에도 「개고리타령」 · 「개구리 · 올챙이노래」 등이 각처에서 전승된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채록된 「개고리타령」은 앞소리와 후렴을 선창자와 후창자가 나누어 부르는 선후창의 민요로서, 풍부한 사설을 담고 있다. 후렴만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개∼골 개∼골 개고리 개고리 개∼골
개골을 잡을라면 양식먹고 대돈받고
양팔을 뚝뚝걷고
미나리 방죽을 더듬어라.
이처럼 개구리는 우리의 삶의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친근한 동물로서, 울음을 잘 울고 멀리 뛰고 숨을 벌럭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속담 · 설화 · 민요의 다양한 소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