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삼국시대의 불교유적, 방어유적 등 많은 유적이 구릉이나 주변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인류 활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주동 고분군은 아주동의 서쪽에 위치하는 국사봉(國士峰: 해발 465m)에서 동쪽의 옥포만으로 뻗어 내린 남동쪽 구릉 말단부 일대의 구릉 능선과 사면에 해당하며, 해발 15∼30m사이에 분포한다. 고분군은 동아대학교박물관 · 경남문화재연구원 ·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이 수차례에 조사를 실시하여 지석묘 17기와 삼국시대의 횡구식석실분 30기 등 47기가 확인되었다. 1997년 1월 30일에 경상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와 석기 등과 삼국시대의 유개고배, 단각고배, 개, 대부완, 배, 부가구연대부장경호 등의 토기류가 주로 출토되었다. 횡구식석실분은 계단식 경작과 자연유실 등으로 거의 바닥만이 잔존하고 있지만 평면형태, 석실의 횡구부, 시상의 위치는 3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었으며, 축조재료와 조립상태, 시상대의 구조 및 유물 부장양상에 따라 세부적인 구분이 가능다. 그리고 유물은 유구의 잔존 상태가 불량하여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런 점을 미루어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엽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아주동 유적에 있어서 묘제와 유물의 양상이 달리 나타나는 현상이 주목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거제지역에 상군(裳郡)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주동 유적에 있어서 묘제와 유물의 양상이 변화하는 시점이 바로 상군(裳郡)의 설치시기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거제지역의 세력이 그 독립적 위상을 상실하고 신라 중앙정부의 지방 통치 구조에 편입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그에 따른 묘제와 유물에 있어서도 이러한 사실이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유구의 분석결과 해발고도가 다소 높은 지역에서부터 고분이 조성되기 시작하여 차츰 아래 구릉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으며, 석실분은 중복 없이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분묘조성 집단이 일정한 묘역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분묘를 조성한 것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횡구식석실분만이 조영되고 있으므로 조영집단의 존재양상과 성격 및 위세 등을 파악하는데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분군의 피장자들은 아마도 신라가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흡수한 세력의 유력한 집단묘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주동 고분군에서 다른 가야세력권보다 신라토기양식이 다수 출토되는 것은 일본과의 대립 또는 교류차원에서 영남 도서지방에 신라 중앙정부의 지배력을 향상시킨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