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트기식 고분은 세 벽과 천장을 먼저 완성한 다음 터진 한쪽 벽으로 주검을 넣고 그 벽을 막아서 만든 형식의 무덤이다. 분묘의 입구가 트인 형식으로 ‘횡구식고분(橫口式古墳)’이라고 한다. 묘실 내에 묘길[羨道]을 갖춘 형식과 설치하지 않은 형식으로 구분된다. 묘실의 규모를 크게 하면서 천장을 올리기도 전에 무너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추가장인 부부합장을 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이 고분은 주로 가야와 신라에서 성행하였다.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안동 조탑동고분, 의성 탑리고분, 부여의 정암리·지산리 고분, 홍성 성호리고분, 익산 성남리고분 등을 들 수 있다.
분묘의 입구가 트인 형식이므로 ‘횡구식 고분(橫口式古墳)’이라고 한다. 묘실 내에 묘길[연도(羨道)]을 갖춘 형식과 설치하지 않은 형식으로 구분된다. 초기의 형식은 묘실이 기본적으로 수혈식고분(竪穴式古墳)[구덩식 고분]과 같은 구조에서 묘길을 시설하지 않고 한 쪽 벽만을 나중에 막아 널방을 축조했으나 점차 묘실의 공간이 커지고 묘길을 구비한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횡구식 고분의 발생은 매장주체(埋葬主體) 시설인 묘실의 규모를 크게 함으로써 야기되는 축조공법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등장된 형식이다.
수혈식 고분의 묘실벽이 높아져 천장석으로 얹어 누르기 전에 도괴의 우려가 있을 때 부득이 횡구식고분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장법(葬法)의 변화에서 부부 합장(夫婦合葬)이라는 추가장(追加葬)을 하기 위해서 고안된 묘제(墓制)이다.
횡구식 고분은 수혈식계의 횡구식 돌덧널무덤(橫口式石槨墳)과 횡혈식계의 횡구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으로 구분된다. 종래 횡혈식계인 횡구식 돌방무덤의 성격으로 구분되었던 횡구식 돌덧널무덤은 한 쪽의 작은 묘실문[墓室門]을 열고 들어가는 횡구식 구조이지만 전체적으로 수혈식 돌덧널무덤의 구조이다.
추가장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수혈복개(竪穴覆蓋)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횡구식을 취한 형식이다. 횡구식 돌방무덤은 횡혈식 돌방무덤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묘길의 유무에 관계없이 묘실에는 널받침대[棺臺, 屍床臺]가 설치되어 있고 추가장의 실례를 보이고 있다.
횡구식 고분은 주로 가야와 신라의 묘제로 성행하였다. 횡구식 돌덧널무덤은 추가장의 성행과 고구려 · 백제의 횡혈식 돌방무덤의 영향을 받아 점차 횡구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이 두 계통의 횡구식 고분의 편년은 수혈식계의 횡구식 돌덧널무덤은 4세기 후반∼5세기, 횡혈식계의 횡구식 돌방무덤은 5세기 중반∼6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축조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분의 형식 변천은 수혈식 고분에서 횡구식 고분을 거쳐서 횡혈식 고분으로 발전되었다.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안동 조탑동 고분, 의성 탑리 고분, 대구 비산동 제34호분, 성주 성산동 제1호분( 성주 성산동 고분군에 포함), 공주 보통골 고분군 · 공주 남산리 고분· 공주 송학리 고분군, 부여 정암리 고분군· 부여 지산리 고분, 보령 보령리 고분군, 홍성 성호리 고분군, 익산 성남리 고분군에 포함)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