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리고분군은 1989년 국립공주대학교박물관에서 이미 도굴, 파괴되어 있던 돌방무덤〔石室墳〕을 수습, 정리한 것이다. 이 고분군은 서해안에 인접한 산지에 입지해 있으며, 결성면의 서쪽에 위치한 해발 236m의 청룡산(靑龍山) 남향의 구릉자락에 있다.
남북으로 길게 드리워진 표고 40∼80m의 구릉에 조영되었던 고분들은 도굴, 파괴로 인해 지표면에 석축 유구를 드러낸 것이 대부분으로 20여 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14기가 발굴조사되었는데, 12기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며 1기는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다른 1기는 파괴가 심해 파악이 어렵다.
조사된 고분들은 모두 돌방무덤 계열로 본래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천장 덮개돌이 남아 있는 것은 7기이고, 나머지는 천장돌(天障石)이 완전히 제거, 유실되었다.
널방은 대체로 장방형의 구조이고, 깬돌으로 축조하였다. 대체로 하단에 대형석을 세우고 그 위에 널찍한 판석형 석재를 뉘어 쌓아올린 형태이다. 널방은 동·서·북의 벽체와 남벽에 설치한 입구 및 널길로 구성되어 있고, 널방의 규모는 고분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벽에 설치한 입구 및 널길은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널길과 입구의 위치는 동벽에 연해 있는 형식과 서벽에 연해 있는 형식도 있지만, 대체로 널방의 중앙에 설치하였다. 입구는 문틀시설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널길은 비교적 짧은 형태로 뚜껑돌 없이 벽면 축석이 이루어져 있으나 폐쇄석으로 채워져 있었다.
널방 천장은 평천장이나 맞조임의 구조 및 고임형 천장의 형식이 많다. 다만 7호분은 동서 장벽을 맞닿을 만큼 좁혀 터널형의 구조에 가깝다. 널방 바닥은 생토 및 깐돌〔敷石〕이 함께 남아 있으며, 제1호와 제5호에 배수시설이 있기도 하다.
이미 파괴와 도굴로 인해 출토된 유물은 약간의 관재(棺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9호분에서 토기 6점, 철제품 4점, 널장식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고, 제2호분과 제3호분에서는 금동제 귀걸이와 널못, 널고리가 수습되었다.
성호리고분군은 평천장에 맞조임 또는 고임식의 구조로 미뤄볼 때, 6세기 전반에서 중엽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고분군이 조성된 지역은 당시 백제의 중심권인 웅진(熊津)이나 사비(泗沘)와는 거리를 지니고 있음에도 묘제가 이들 중앙지역과 관련을 보이고 있어 두 지역의 문화전파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한편 한성시기 홍성지역의 치소로 알려진 신금성유적이 인접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고분군이었을 가능성이 상정되지만 시기 차가 있어서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