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보통골 고분군 ( 보통골 )

고대사
유적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보통골고분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공주 보통골고분군은 1930년대 현황조사가 이루어진 후 백제고분군으로 알려져 왔다. 1990년 공주사범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백제시대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등이 조사된 유적이다. 이 고분군은 활모양〔穹窿式〕천장 구조와 평천장 구조를 갖춘 굴식돌방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용

보통골고분군은 1990년 7월에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공주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3지역으로 구분된 조사범위에서 17기의 고분이 발굴되었는데, 백제시대 고분은 모두 15기이다. 이외에 통일신라시대 고분 1기, 고려시대 고분 1기도 있다.

백제시대의 고분 15기 가운데 굴식돌방무덤은 모두 11기이다. 이 가운데 4기는 활모양의 구조를 갖춘 것으로 널길〔羨道〕이 오른쪽 방향에 시설되었으나 천장 부분은 대부분 유실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평천장으로 널길이 중앙에 시설된 것들이다. 백제 돌방무덤〔石室墳〕으로서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 제4·8호분〕과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 제16호분〕, 돌덧널독무덤〔石槨 甕棺墓: 제9호분〕도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무덤은 백제시대의 돌방무덤과 평면의 구조라든가 돌을 쌓은 기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와 금동제귀걸이〔金銅製耳飾〕, 청동제 장식품 및 은제팔찌·곱은옥〔曲玉〕·탄화목제 편옥(扁玉), 그리고 널고리와 널못〔棺釘〕등이 있다. 특히 제17호분에서 출토된 토기 가운데 대형 독모양토기〔甕形土器〕안에 사람뼈가 채워져 있었는데 토기 자체를 뼈단지〔骨壺〕로 사용하여 무덤 내에 안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적으로 껴묻거리는 장신구가 많으며 이들 장신구들은 당시 공예미술의 현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탄화목제 편옥은 희소성이 큰 것으로 무령왕릉 출토품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유물이다.

의의와 평가

보통골고분군의 축조연대는 활모양 천장 구조의 경우는 6세기 초반으로, 나머지 고분들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전반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군은 백제의 웅진도읍기 고분문화의 환경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 서로 다른 형식의 무덤이 공존하여 고분문화의 변화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특히 제17호분에서는 대형의 독모양토기 안에 사람뼈가 매납되어 있어 추가장(追加葬)이라는 장제(葬制)의 존재는 물론 이를 통한 백제의 폭넓은 장제 문화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참고문헌

『공주 보통골백제고분군 발굴조사보고서』(안승주·이남석, 1992)
「公州に於ける百濟古墳(7)」(輕部慈恩,『考古學雜誌』26-3, 1936)
「公州に於ける百濟古墳(5)」(輕部慈恩,『考古學雜誌』24-6, 1934)
집필자
이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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