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장원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도랑움무덤 · 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이칭
이칭
장원리유적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도랑움무덤 · 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개설

공주 장원리유적은 1999년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조사되었다. 이 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퇴적층과 청동기시대 생활유적, 원삼국시대 고분, 그리고 조선시대 관련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중심을 이룬 유구는 원삼국시대 주구움무덤[周溝土壙墓〕이다. 움무덤의 조성연대는 3세기 전반에서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내용

장원리유적에 대한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후기의 유물퇴적층, ㉯청동기시대 서기전 8∼5세기대의 주거지 2기, 저장구덩이 5기, 유물퇴적층 1개소, ㉰원삼국시대 (주구)움무덤 29기와 독널무덤[甕棺墓] 7기, ㉱조선시대 주거지 2기, 움무덤 153기, 건물지 1기, 시대 미상의 굴립주건물지 1기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 유물퇴적층은 구체적인 유구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토기편과 석기편이 수습되었다. 토기편은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 교차집선문(交叉集線文), 연속점열문(連續點列文), 빗금무늬[短斜線文] 등의 문양이 나타나는데, 서해 중부지역 신석기시대 후기에 대표적으로 확인되는 횡주어골문양이 주를 이룬다. 석기는 굴지구(掘地具)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돌괭이 8점과 갈돌[石棒], 공이, 숫돌[砥石]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와 저장구덩이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은 원형과 말각방형으로 중앙에 타원형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는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 유형에 해당된다. 저장구덩이는 평면 원형이며, 주거지 주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내부에서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단계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와 유사한 유적이 부여 나복리유적, 보령 관창리유적, 진죽리유적, 대전 궁동유적, 군산 도암리유적 등에서 확인된 바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 송국리형 문화와 덧띠토기문화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판단된다.

원삼국시대 고분은 움무덤 29기, 독널무덤 7기가 있는데, 움무덤은 대부분 주구(周溝)가 돌려진 주구움무덤이다. 조사된 움무덤은 일정한 묘역을 가지고 상호 중복 없이 조성되었다. 주구의 일부가 유실되어 활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만 정상부에서는 말각방형이 확인되었다. 특히 능선 상부에 방형 주구를 갖춘 2기의 무덤을 중심으로 그 주위 사면에 ‘ㄷ’자형 도랑을 두른 주구움무덤과 움무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친족관계 혹은 위계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움무덤은 길이 190∼483㎝, 너비 63∼117㎝로 다양하며, 장단비는 3 : 1 이상으로 평면 세장방형에 가깝다. 매장주체부는 나무널[木棺]과 덧널[木槨]로 구분되는데, 나무널은 판재를 결구한 조립식으로 파악되며 나무널 내부에는 대부분 우측 또는 좌측 단벽에 격벽으로 부장 칸을 구분해 설치한 것으로 확인된다. 덧널이 확인된 분묘는 1호묘 뿐인데, 덧널을 조립식으로 결구한 후 덧널 중앙부에 나무널을 안치하고 양쪽 단벽 부분은 부장 공간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구가 설치되지 않은 움무덤은 2기가 있다. 이들 움무덤은 상하로 분포하여 이혈합장묘(異穴合葬墓)일 가능성이 있는 것과 주구움무덤의 주구에 중복된 것도 있다. 대체로 주구움무덤보다 묘광이 작으며, 나무널의 흔적이 확인된다. 한편 독널무덤 6기가 주구움무덤의 주구에 조성되었는데, 이것들은 주구움무덤에 딸려 매장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출토된 유물은 모두 무덤에 남아 있었는데, 토기류와 철기류로 구분된다. 토기류는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圓低短頸壺]와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가 공반된다. 특히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가 많이 확인되는데, 이외에 2호 움무덤에서 굽다리토기[臺附土器], 16호 움무덤에서 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가 출토되었다. 철기는 고리자루작은칼[環頭小刀], 손칼[刀子], 쇠투겁창[鐵矛], 쇠화살촉[鐵鏃], 쇠끌[鐵鑿] 등이 있다. 장신구류로는 호박제 구슬이 일부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장원리유적의 주구움무덤은 마한시대 분묘로서 주변에서 조사된 공주 하봉리유적, 천안 청당동유적과 비교할 수 있다. 이 주구움무덤은 공주 정안천변 일대에 존재했을 마한 소국의 중심고분이었을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주구움무덤의 분포 모습을 통하여 마한 각지에 존재했을 소국의 영역에 대한 이해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공주 장원리 유적』(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 2001)
『공주시지: 제7편 공주시의 문화유적』(공주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2001)
「공주 장원리유적 현장설명회자료」(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 1999)
집필자
이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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