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우금치고분군의 존재는 1931년 9월경에 도굴하기 위해 천장이 파괴된 고분이 노출되면서 1932년 일본인 가루베지온〔輕部慈恩〕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1기의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이 발굴조사 되었는데, 이후 지표조사를 통하여 주변 지역에 50여 기의 고분이 지표면에 노출되어 확인되었다.
1932년 조사 당시 굴식 돌방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이 혼재하였으며 일부 굴식 돌방무덤의 벽면에 점토를 바른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조사된 굴식 돌방무덤의 규모는 길이 267㎝, 너비 156㎝이며, 양쪽 단벽을 안쪽으로 내경 시켜서 축조한 아치식으로 금학동고분군과 비교된다. 출토 유물은 금동제귀걸이〔金銅製耳飾〕2점, 곱은옥〔匈玉〕1점, 작은옥〔小玉〕다수가 있다.
이후 우금치고분군에 대해서는 1995년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진행하여 고분군의 존재를 재확인하였으며, 2003년 충청문화재연구원에서 옥룡-태봉동간 동부간선도로 부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이 고분군의 일부를 조사하였다. 당시 조사범위 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고분만 확인되었으나, 주변 지역에 노출된 백제시대 굴식 돌방무덤 1기를 수습조사하였다. 고분은 평면 장방형에 우편재한 연도를 갖춘 굴식 돌방무덤으로, 규모는 길이 250㎝, 너비 105㎝이다. 도굴로 인하여 다른 유물은 전혀 출토되지 않았으나, 관못이 확인되었다. 고분의 축조수법은 공주 신기동 3호분과 유사하며, 축조 시기는 6세기 후반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편년된다.
우금치고분군은 웅진도읍기 도성 주변에 분포하는 고분군으로서 피장자는 그 시기 백제 도성 내에 거주했던 유력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정밀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수습조사와 지표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고분구조는 아치식에서 평천장에 이르는 유형이다. 이 고분군은 6세기 초·중반에서 후기에 이르는 백제의 고분문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