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분강리 · 저석리고분군은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와 부여읍 저석리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1980년대부터 백제고분의 존재가 알려졌으며, 1991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현,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부여읍 저석리 백제 벽돌무덤〔塼築墳〕과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을 발굴조사한 바가 있다. 그리고 1996년에는 공주-부여를 연결하는 ‘백제 큰길’이 개설되는 것을 계기로 공주대학교 박물관이 저석리와 경계를 이루는 분강리 구역을 포함하여 발굴조사를 진행한 것이 분강리 · 저석리고분군이다. 공주대학교 박물관의 조사 범위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돌널무덤〔石棺墓〕와 원삼국시대의 움무덤〔土壙墓〕외에 백제시대의 돌방무덤은 물론 매납유구 등의 특이 시설도 확인되었다.
1991년 저석리 일대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구는 백제시대 돌방무덤 10기가 있으며, 1996년 분강리 구역의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8기, 원삼국시대 움무덤 3기, 그리고 백제시대 돌방무덤 31기가 확인되었다. 백제시대 고분은 전체 조사범위에 넓게 분포하는데, 고분의 종류는 굴식 돌방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 돌덧널 독널무덤〔石槨 甕棺墓〕, 매납 유구 등으로 다양하다. 유적의 대부분은 백제시대의 굴식 돌방무덤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굴식 돌방무덤은 능선 위에서 아래로 조성되었으며, 능선 하단부에서는 앞트기식 돌방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모두 혼재된 상태로 확인된다. 굴식 돌방무덤은 초기형부터 사비시대의 늦은 단계의 형태까지 망라되어 있어 오랜 시간 조성된 유적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돌방무덤의 구조는 궁륭식(穹窿式)과 조임식과 같은 원형천장을 비롯하여, 평천정인 고임식, 그리고 수평식도 남아 있다.
부장된 유물은 대부분이 토기류이다. 기종은 세발토기〔三足土器〕 · 뚜껑접시〔蓋杯〕 · 짧은목항아리〔短頸壺〕 · 바리〔鉢〕 · 작은항아리 · 뚜껑접시모양토기〔蓋杯形土器〕등이 출토되었다. 대체로 5세기 중 · 후반에서 6세기 무렵까지의 토기가 망라되어 있으면서 그 중에서 귀때〔注口〕가 달린 귀때토기〔注口土器〕와 같은 특이한 기형도 남아 있다. 그 이외의 유물로서 13호에서 출토된 큰칼〔大刀〕을 비롯하여 쇠손칼〔鐵刀子〕나 쇠도끼〔鐵斧〕 · 쇠낫〔鐵鎌〕의 철제품도 있으며, 장신구로서 17호분에서 금동제 귀걸이가 출토되었다.
분강리 · 저석리 고분군은 청동기시대는 물론 원삼국 · 백제시대 고분이 모두 확인된다. 특히 중핵을 이루고 있는 백제고분은 굴식 돌방무덤과 앞트기식 돌방무덤, 그리고 구덩식 돌덧널무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이 망라되어 있다. 고분의 조영 시기가 웅진천도 이전의 5세기 중반에서 사비천도 이후의 7세기대의 것으로 백제 묘제의 변화상이 일목요연하게 전개된 형태로 나타나는 유적이다. 그중에서도 한성도읍기의 것으로 편년되는 초기의 굴식 돌방무덤의 존재는 이 묘제의 지방 확산과 함께 한성도읍기 백제 지방사회에 있어서 묘제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