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안영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독무덤 · 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이칭
이칭
안영리유적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독무덤 · 굴식돌방무덤 관련 생활유적.
개설

공주 안영리유적은 1990∼2000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청동기시대∼원삼국·백제시대에 이르는 생활유적과 함께 분묘가 혼재되어 있다. 이 유적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 해당 부지의 구제발굴 결과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서기전 7∼6세기로 편년되는 소위 송국리유형의 주거유적이며, 원삼국·백제시대 생활유적은 3세기 말에서 4세기로 편년되는 주거지와 다량의 저장구덩이가 있다. 이외에 백제시대 고분들은 5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되는 움무덤〔土壙墓〕과 돌방무덤〔石室墳〕이 있다.

내용

안영리유적의 생활유적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원형주거지 10기, 저장구덩이 15기가 있으며, 원삼국·백제시대의 주거지 7기와 저장구덩이·구덩이 49기 외에 아궁이시설 1기도 있다. 이 유적에서 백제시대 고분은 모두 14기가 있다. 생활유적이 주로 구릉의 능선 상부에 남아 있는 반면 분묘유적은 경사면에 남아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평면 원형으로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 소위 ‘송국리형주거지’ 유형이다. 그리고 저장구덩이로 판단되는 유구는 상단보다는 바닥이 넓은 단면 플라스크형에 평면 원형의 저장구덩이로, 주거지 주변에 밀집된 배치상을 드러낸다.

원삼국시대와 백제시대 주거지는 평면이 장방형인 수혈주거지이고, 벽면 모서리에 아궁이시설도 남아 있다. 바닥은 별도의 시설 없이 생토면을 정지하였으며, 기둥은 불규칙하게 남아 있다. 이들 주거지의 주변에는 지하에 굴착한 저장구덩이가 적지 않게 남아 있는데 평면이 원형과 방형으로 구분되지만 상호간의 선후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원형으로 만든 구덩이가 더 깊다. 이들 원삼국·백제시대의 저장구덩이는 외곽에 주거지가 자리하면서 중앙에 저장용 구덩이가 밀집된 형상으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저장구덩이 배치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출토된 유물은 주거지와 구덩이 모두에서 깊은바리〔深鉢〕·바리〔鉢〕·주발〔椀〕·독〔甕〕·쟁반·귀때토기〔注口附土器〕등의 생활용기가 확인된다.

백제시대 고분은 움무덤과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 그리고 굴식 독널무덤〔橫穴 甕棺墓〕이 있다. 고분의 분포는 대부분 능선 사면부에서 확인되는데, 출토유물은 거의 없다.

의의와 평가

안영리유적은 청동기시대는 물론 원삼국·백제시대의 주거유적이 집자리와 저장구덩이가 세트를 이루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는 안영리유적의 입지환경이 주변의 넓은 구릉 외에 충적지대가 발달되어 있어서 해당 시기의 생업경제가 농경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음을 추론케 하면서 이 유적은 그러한 생활환경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안영리유적의 저장구덩이는 인근의 장선리·덕지리·화정리유적, 논산 원북리·정지리유적에서 조사된 대규모의 저장구덩이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안영리유적』(공주대학교박물관, 2002)
집필자
이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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