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경전의 뒤뜰 샛담의 일부분을 굴뚝으로 만들고 뒷마당을 향하는 외벽 중앙부를 장방형으로 구획하였다. 그리고 여러 개의 벽돌로 십장생 무늬를 짜 맞춘 뒤 회를 발라 화면을 구성하였다. 이 굴뚝은 담장보다 한 단 앞으로 돌출시켜 장대석 기단 위에 벽돌로 쌓았다.
벽면의 크기는 너비 381㎝, 높이 236㎝, 두께 65㎝이다. 제일 아랫부분에는 좌우에 각각 벽사상(辟邪像)을 전(塼)으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그 위로(중앙부) 가로 303㎝, 세로 88㎝의 장방형 공간을 구획하였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해·산·구름·바위·소나무·대나무·거북·사슴·학·연꽃·불로초 등을 제각기 다른 조형전(造形塼)으로 만들어 회벽에 화면을 구성하였다.
그 위로는 중앙에 용문전(龍文塼)을, 좌우에는 학문전(鶴文塼)을 끼웠는데 이 학들은 영지(靈芝)를 입에 물고 있다. 윗부분에는 소로[小累]·창방(昌枋)·첨차(檐遮)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이었다. 정상부에는 점토로 만든 연가(煙家: 굴뚝 위에 꾸밈으로 얹은 기와로 만든 지붕모양의 물건)를 두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인 1865년(고종 2) 신정왕후(神貞王后: 익종의 비인 趙大妃)를 위하여 창경궁 자경전을 본떠서 교태전(交泰殿)의 동쪽에 지었는데, 화재를 당하여 1888년 재건한 것이다. 십장생 무늬는 가장 한국적인 무늬로 알려진 것으로, 이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조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굴뚝은 아미산(峨嵋山)의 굴뚝과 같은 유형의 무늬를 하였으나, 아미산의 굴뚝이 육면체로 화면을 구성한 데 비하여 장방형으로 처리하면서 넓은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여러 차례 보수하면서 약간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굴뚝이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장식적인 기능을 충실히 하였다.
그 조형미도 매우 세련되어 조선시대 궁궐에 있는 굴뚝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