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권 16책. 신위가 1812년(순조 12) 연행(燕行)에서 돌아온 뒤 이전 작품은 졸작이라 하여 불태워버리고, 그 뒤의 작품만 모아두었던 것을 둘째아들 신명연(申命衍)이 편찬하였으며, 정경조(鄭慶朝)가 서(序)를 썼다. 신위가 43세 이후 지은 시를 시대순으로 싣고, 분량과 시를 짓게 된 배경이 유사한 것을 묶어, 각각 그 편명을 붙이고 있다.
『경수당전고』에 실려 있는 시는 자료면에서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방대한 4,000여 수의 시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둘째, 당대의 문인과의 친교를 맺은 시가 많다는 점이다. 국내인으로는 김조순(金祖淳)·김정희(金正喜)·정약용(丁若鏞)·정학연(丁學淵)·한치응(韓致應)·홍의호(洪義浩)·이유원(李裕元) 등이 있으며, 청나라 문인으로는 옹방강(翁方綱)·왕재청(汪載淸)·섭지선(葉志詵)·오숭량(吳嵩梁) 등이 있다. 이들 문인과 주고받거나 화답한 시가 많이 남아 있다.
셋째, 우리 문학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되는 시가 많은데, 「소악부」 40수와 「동인논시절구(東人論詩絶句)」 35수, 「관극절구(觀劇絶句)」 20수 등을 들 수 있다.
「소악부」는 우리나라 악부에 모두 곡자(曲子)의 이름을 붙이고, 그 내용을 칠언절구로 한역하였다. 이것은 신위가 기억하고 있는 곡을 임의로 선별하여 시로 지은 것으로서, 당시의 악부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동인논시절구」는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에서 조선의 김상헌(金尙憲)에 이르기까지 49인의 시인을 시로써 평한 것이다. 각 시인의 특징과 옛 사람이 평한 용어를 사용하여 이루어진 시로서, 시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옛 사람이 평한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끝에 출전을 밝히고 있다.
「관극절구」는 저자가 연희를 보고 그 느낌을 지은 것이다. 최치원이 연희를 보고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 이래 많은 시인들이 이와 비슷한 시를 지었으나, 신위의 시에서 비로소 ‘관극’이라는 용어가 정착된 듯하다. 「관극절구」는 판소리연구에 자료가 되어왔다.
그밖에 신위 문학의 진수가 되는 시(詩)·서(書)·화(畫)와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시와 시선일치(詩禪一致)의 경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