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7월 28일에 경주노서리고분군,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황오리고분군, 경주인왕리고분군과 더불어 사적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되었다.
경주노동리고분군 중에서 대표적인 금령총(金鈴塚) · 식리총(飾履塚)은 이미 발굴 조사되었으나, 봉황대고분(鳳凰臺古墳)은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다.
금령총(127호분)은 봉황대 남쪽에 있는 지름 16m 정도의 소규모 원분(圓墳)으로서, 1924년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에 의해 발굴되었다. 구조는 지하에 장방형의 구덩이를 판 뒤 바닥에 냇돌과 자갈을 깐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덧널 내부에서 금관 · 귀걸이 · 팔찌 · 허리띠 · 신발[銅履] · 쇠솥 · 옷칠그릇 · 유리그릇 ·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토기 중 배모양토기[船形土器]와 기마인물토기(騎馬人物土器)는 그 당시의 의복과 생활을 짐작케 해주는 좋은 자료이다.
이 고분은 분구(墳丘)의 크기가 소규모이지만 출토품이 화려하고 피장자가 착용한 장신구의 크기가 소형이며 순장(殉葬)의 흔적으로 보아 신라 왕자의 분묘로 추측되고 있다.
식리총(제126호분)은 1924년 우메하라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금령총의 동쪽에 있다. 봉토의 지름은 9m이며 지하에 덧널을 설치한 돌무지덧널무덤이다. 내부에서 귀걸이 · 유리옥의 가슴장식과 은제허리띠 · 은제팔찌 · 삼두환대도 · 쌍룡환대도(雙龍環大刀) · 금동제식리(金銅製飾履) · 말갖춤토기 · 옷칠그릇 등이 출토되었다.
금공예품 중 용봉문계 장식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특히 식리는 우수작으로서 이것에 의하여 이 고분이 식리총으로 명명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노동리고분군은 노서리고분군과 함께 경주시내 평지에 분포하는 돌무지덧널무덤 중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