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7월 28일에 경주노동리고분군,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황오리고분군, 경주인왕리고분군과 더불어 사적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면적 21,794㎡. 경주노서리고분 중에서 금관총(金冠塚), 서봉총(瑞鳳塚), 호우총(壺杅塚), 은령총(銀鈴塚), 옥포총(玉圃塚), 마총(馬塚), 쌍상총(雙床塚), 우총(牛塚), 제138호분, 노서동 215번지 고분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그밖에 아직 발굴이 실시되지는 않았으나 서봉황대고분(西鳳凰臺古墳)이 중요하다.
노서리고분군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군은 고신라기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금관총, 서봉총, 호우총, 제138호고분, 노서동 215번지 고분이 여기에 속한다.
제2군은 통일기의 돌방무덤으로 우총·쌍상총·마총이 여기에 속한다.
금관총은 1921년 우연히 유물이 발견되어 수습조사가 행해졌다. 출토된 다량의 금공예품에는 용문계 당초문(龍文系唐草文)이 주로 시문되었으며, 청동제 자루솥〔鐎斗〕에 장식된 파상인동문(波狀忍冬文)은 중국 대동(大同) 사마금룡(司馬金龍) 부부묘와, 낙양(洛陽) 빈양동(賓陽洞)의 본존광배(本尊光背)의 인동문과 비교될 수 있어 연대는 5세기 말경으로 보인다.
서봉총은 쌍무덤의 북분인데 남분은 둘레돌〔護石〕의 중복관계로 보아 북분인 서봉총보다 늦게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은합(銀盒)에는 연대결정의 자료를 제공해주는 명문이 있어, 신묘년(511년 혹은 451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호우총은 은령총과 함께 쌍무덤을 이루며 출토유물과 고분의 구조로 미뤄볼 때 연대를 6세기 전쯤으로 볼 수 있다.
쌍상총은 도굴로 인해 유물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통일신라시대 토기조각이 소량 조사되었다. 내부구조는 남쪽으로 널길〔羨道〕이 나있는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네 벽에 석회를 발랐다. 돌방의 중앙에는 자연석과 벽돌을 이용한 널받침이 설치되어 있다.
마총은 이미 도굴되어 유물의 전모는 알 수 없으나, 1920년 수습발굴 때 말뼈〔馬骨〕와 안장틀 조각이 출토되어 ‘마총’으로 불려왔다.
노서리 고분군은 노동리 고분군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후기 돌무지덧널무덤(6세기)과 전기 돌방무덤(7세기)으로 구성되어 있어, 두 종류 묘제의 교체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