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5책. 필사본.
견문과 감회를 적은 한시를 일기체로 편찬한 것이다. 당시 정사는 민태혁(閔台爀), 부사는 권선(權襈)이었으며, 책이름 중 ‘계산(薊山)’이란 ‘계구(薊丘)’와 같은 뜻으로 연경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은 서장보가 보관했다가 전해져 서장보의 저술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내용 상으로 살펴 볼 때 아님이 확실하다. 이 책은 여느 사행 기록과는 달리 견문과 사행 경과를 모두 시 445수로써 나타내고 있다.
일기의 체재는, 먼저 날짜·날씨·출발지·오찬 지점과 숙박지를 적고, 그 끝에 가서(家書)의 수발 상황을 간략히 간주(間註)했으며, 시제(詩題)·시서·시의 순으로 기록하였다. 시서는 주로 시를 짓게 된 동기와 상황을 소상히 설명한 것으로 다른 사행 기록의 기행문에 해당된다.
모두 5권으로 나누어졌다. 권1은 「출성(出城)」이라는 제목 아래 서울을 출발, 의주 용만관(龍灣館)에 도착하여 체류할 때까지를 99수의 시로써 기술하였다. 이어서 「만도(灣渡)」라는 제목 아래 용만관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십리하보(十里河堡)에 이르기까지를 시 59수로 다루었다.
당시 양국 사이에는 문책(門柵)으로 국경선을 표시하여 모든 사행원을 다시 점검, 되돌려보내기도 했는데, 이 때도 253명 사행원 가운데 100여 명을 되돌려보냈다. 권2는 「도만(渡灣)」이라는 제목 아래 심양(瀋陽)을 거쳐 옥하관(玉河館)에 이르기까지를 시 124수로써 다루었으며, 요야(遼野)의 풍물과 고적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였다.
요나라 땅은 한족·만주족·몽골족뿐 아니라 한족(韓族)까지 섞여 많은 종족이 각축전을 벌여 사적이 많은 곳이었다. 저자는 그 사적의 내력을 하나하나 시서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만주족에 대한 적개심을 많이 내보였다.
권3은 「유관(留館)」이라는 제목 아래 연경의 옥하관에서 머무르며 활동한 일을 185수의 시로써 소개한 것이다. 중국 수도의 궁궐과 관아를 비롯, 사원·누대(樓臺)·원유(苑囿: 울타리를 치고 동물을 기르던 동산)·지정(池亭) 등을 두루 유람하고, 서화와 골동품점인 유리창(琉璃廠) 등 상점도 돌아보았고, 희원(戱猿)·환희(幻戱)·등희(燈戱) 등 연경 특유의 흥행도 관람하고 지식인과 접촉도 가졌다.
그러나 이것은 미리 계획되었거나 누구의 소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름 있는 선비를 만났거나 내용이 풍부한 것은 아니다. 권4는 「복로(復路)」라는 제목 아래 연경을 떠나 귀가하기까지를 다룬 것으로, 시는 78수이다. 권5는 부록으로, 시는 없이 당시 사행에 대한 여러가지 사항과 청나라의 특기할만한 것을 모은 것이다.
사행 일행의 총목과 예물, 거쳐간 고을과 관아·세폐·도리(道里) 등과 산천·성궐·궁실·의복·음식·기용(器用)·주거(舟車)·과거제도·가축·언어·호번(胡藩)·공세(貢稅) 등을 기록하였다. 규장각도서 및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