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4년(광해군 6) 『양선생왕복서(兩先生往復書)』를 기대승의 아들 기효증(奇孝曾)이 간행했고, 1629년(인조 7) 문집과 『논사록(論思錄)』을 선산부사 조찬한(趙纘韓)이 합간하였다. 문집은 권두에 장유(張維)의 서(序)와 장현광(張顯光)의 지(志)가 있고, 권말에 조찬한·기영환(奇永桓)의 발문이 있다. 『양선생왕복서』는 권말에 기효증과 김익(金熤)의 발이 있고, 『논사록』은 권말에 조찬한·기세훈(奇世勳)의 발이 있으며, 『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는 권말에 기형섭(奇亨燮)·기우흥(奇宇興)의 발이 있고, 별집은 권말에 기동준(奇東準)의 발이 있다.
본집 3권 3책, 속집 2권 2책, 양선생왕복서 3권 3책, 성리왕복서 2권 1책, 논사록 2권 1책, 부록 2권 1책, 합 14권 11책.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본집 권1에 연보와 시 336수, 권2에 표(表) 13편, 의(議) 2편, 설 2편, 전(箋) 1편, 소 4편, 장(狀) 8편, 차(箚) 1편, 논 2편, 기 8편, 문 11편, 권3에 묘갈명 6편, 묘기 11편, 서(書) 7편, 행장 3편, 서(序)·발 2편, 속집 권1에 시 340수, 권2에 서(書) 6편, 잡저 4편, 서(序) 1편, 발 1편, 문 1편, 부록으로 행장 1편, 시장(諡狀)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논사록』은 상하 2편, 『양선생왕복서』는 권1∼3에 서 133편, 『성리왕복서』는 상하 32편, 부록의 권1·2에 제문 20편, 만장 57편, 실기 10편, 소 2편, 문 2편, 서술 1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장시·배율 등 거운(巨韻)이 많고, 차운(次韻)은 친지들과 주고받은 것이 많다. 조찬한은 문집의 발문에서 기대승의 시문은 우아하고 건실하여 그의 장시(長詩)는 한유(韓愈)의 풍에 가깝고, 단편은 도잠(陶潛)과 비슷하며, 변론은 구양수(歐陽修)와 흡사하다고 평하였다.
『논사록』은 선조의 명으로 당시의 검열 허봉(許篈)이 경연에서 기대승의 각론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초록한 것인데, 그의 정치적 이념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임금이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사항이 일곱 가지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라의 안위는 재상에게 달려 있다. 어진 재상을 얻으려면 먼저 임금의 덕이 성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경연의 강학을 독실히 해야 한다. 둘째, 언로(言路)가 열리면 나라가 태평하고 언로가 막히면 위태롭다. 임금은 국민의 여론을 대간(臺諫)을 통하여 듣게 되므로 언제나 언로를 훤히 열어놓아야 된다. 셋째, 시비(是非)가 명확해야 인심이 복종하고 정령(政令)이 바로잡힌다. 넷째, 임금은 먼저 수신에 힘쓰고 어진 선비들을 잘 등용해야 한다. 다섯째, 조광조(趙光祖)에게 증직(贈職)을 내리면 의를 밝히고 성학(聖學)을 권장하며 임금의 덕을 빛내는 일이 될 것이다. 여섯째, 임금은 재용을 절약하게 하고 가렴하는 관리를 제거해, 그 재용의 혜택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일곱째, 예의를 숭상하여 선치(善治)의 근본을 견고히 해야 한다.
기대승의 철학적 사상은 「이심법설(移心法說)」에 잘 정리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몸의 주인[主]이 되어서 물(物)에 명하는 것이니, 고요하면 성(性)이 되고 피어나면 정(情)이 되는 것이다. 바깥이 둥글고 속이 뚫린 것은 마음의 체(體)요, 신명(神明)하여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용(用)이 되어서, 기(氣)를 타고 동하면 하늘에 날 수도 있고 연못에 잠길 수도 있으며, 차게 되어 얼음 같을 수도 있고 모아져서 불같을 수도 있어서, 그 변화가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공경으로써 운용하여 마음을 옮겨 성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고 하여, 마음을 언제나 공경으로써 조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양선생왕복서』인데, 이것은 기대승이 이황(李滉)과 8년여의 긴 세월에 걸쳐서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논변한 왕복서간 문집이다. 이 논변은 사단칠정에 대한 이황의 해석에 대해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황은 정지운(鄭之雲)이 “사단은 이(理)에서 발(發)하고 칠정은 기(氣)에서 발한다.”고 한 것을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을 기의 발이다.”고 수정했는데, 기대승은 여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이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단과 칠정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사단은 칠정에 포함되어 있는 정의 일부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일원론적 토대 위에서 사단과 칠정을 서로 대비시키고 이·기를 둘로 나누어서 사단과 칠정에 분속시키는 이황의 이원적 입장을 비판하였다. 이러한 기대승의 반론에 따라 이황은 자신의 이론을 몇 차례에 걸쳐 수정하게 되었고, 그 뒤의 성리학자들은 이황과 기대승이 논변한 심성(心性)의 문제를 성리학 연구의 핵심으로 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