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고선지(高仙芝)의 아버지이다. 고사계는 어린 고선지를 데리고 안서(安西)로 가 그 곳에서 커다란 군공(軍功)을 세웠는데, 아들 선지에게까지 영광을 돌려 유격장군(游擊將軍)으로 보임(補任)시켜 주었다. 그의 선대(先代)가 언제 어디로 당나라에 건너갔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만 고구려가 멸망한 뒤 많은 내투인(來投人) · 내부인(內附人) · 유민 · 포로 · 부수(俘囚) 등이 중국 영토로 옮겨간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선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자 그의 아들들간의 불화로 인해 그들이 당나라에 옮겨갔을 때 함께 따라간 일파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당나라 초기의 기록에 많이 나타나는 ‘내사(內徙)’를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의 내사는 전쟁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이 엄청난 이동 속에서 그의 선대가 당나라에 가게 된 것으로 생각해 보는 경우이다. 이 때 안서는 바로 고구려인이 중국의 황폐한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선대는 아마도 사막곡(沙漠曲)에 압송된 고구려인으로 보인다. 장안(長安)에 압송된 고구려인의 대표적 가문으로는 천남생(泉男生)이 있다. 남생이 당나라에 내부했을 때 그를 따르는 유민이 많았는데, 남생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摠管)의 벼슬을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인구가 드물고 땅이 척박한 변경 지대에서 압송된 청장년층으로 둔전(屯田) 개간이나 병민화(兵民化)에 목적을 둔 것과는 달리 수도화(首都化)에 분류되었다. 그의 가계는 5대까지 관직에 올랐다. 이 점에서 고사계의 가문은 고구려 유민 중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