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456년(세조 2)에 조부 김문기(金文起)와 부친 김현석(金玄錫)이 단종복위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탄로되어 참화를 받자 그 아들 충주(忠柱)는 한밤중에 도성을 탈출하여 여러 곳을 떠돌다가 정착하여 살았다.
그는 이곳에 이르러 숯을 구워 파는 것을 생업으로 하면서 스스로 호를 탄옹(炭翁), 즉 ‘숯굽는 노인’이라 하면서 숨어살았다. 그는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 바위 위에 서서 단종이 있는 영월쪽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니 산꼭대기의 소나무도 눈물에 젖어 말라죽었다고 한다.
이에 1827년(순조 27) 그의 9세손인 진사 처일(處一)이 소나무가 서 있던 곳에 정자를 세워 고송정이라 하였고, 김충주가 서 있던 바위를 망월암(望越巖)이라고 하였다.
정자 서쪽에 ‘탄옹고지(炭翁古址)’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원래의 건물은 없어지고, 1936년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그 자리에 세웠고, 현재의 건물은 1992년에 전면 보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