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

고종실록
고종실록
근대사
문헌
일제강점기 이왕직의 주관 하에 고종45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편찬한 역사서. 실록.
정의
일제강점기 이왕직의 주관 하에 고종45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편찬한 역사서. 실록.
편찬/발간 경위

1927년 4월 1일부터 1935년 3월 31일까지 만 8년에 걸쳐 이왕직(李王職) 주관 하에 편찬, 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고종실록』(원명 高宗太皇帝實錄)은 편년 기사 48권 48책(고종 즉위년인 1863년에서 광무 11년인 1907년까지 45년간의 기사)과 목록 4권 4책을 합쳐 52권 52책으로 되어 있다.

편찬한 정부본(正副本)은 영사본 40부와 같이 이왕직 도서관에 소장되었고, 잔여 160부의 영사본은 관계기관에 반포되었다.

오늘날 유포된 74권 60책 3,781장으로 된 『고순종실록』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의 영사본을 대본으로 하여 1970년탐구당(探求堂)에서 상·중·하 3권으로 영인 축쇄한 것이다. 이에는 원 실록에 없는 총색인 1권을 별책부록으로 붙였고 매권마다 목차를 만들어 권초에 붙였으며, 또 구두점을 찍어 이용자가 편리하도록 하였다.

내용

편찬 계획에는 1년 기사를 1권 1책에 수록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고종실록』의 경우 즉위년을 원년으로 통합하고 1894년(고종 31)과 1897년(광무 1)·1898년·1905년은 기사의 양이 많아 분책하여 전 48권 48책이 되었다.

이 실록이 편찬된 때는 일제식민통치기이다. 1927년 4월 이왕직에서는 역대 실록의 예에 따라 고종과 순종의 실록을 편찬하기로 하였다. 준비실을 설치해 임시고용원 10명과 필생(筆生) 26명을 배치하고, 실록 편찬에 필요한 사료를 경성제국대학에서 빌려 자료를 추출, 등사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 3월까지 만 3년에 『일성록』·『승정원일기』 등 각종 기록 2,455책을 이용하여 총계 24만 5356매를 등사하였다. 실록 편찬에 필요한 자료의 등사가 끝나자 이왕직에 편찬실을 설치하고 1930년 4월 편찬위원을 임명, 배치하여 실록찬술작업을 착수하였다.

초대위원장에는 일본인 이왕직차관 시노다(篠田治策)가 취임하였다. 그러나 1932년 7월 그가 이왕직장관에 서임되자 부위원장 직제를 신설하여 이왕직의 예식과장(禮式課長)이던 이항구(李恒九)를 차관으로 승격시켜 부위원장직을 맡겨 실록찬술의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적 총책임은 1930년 4월 감수위원으로 임명된 경성제국대학 교수이던 오다(小田省吾)가 맡았다.

편찬실에는 위원장·부위원장 밑에, 편찬에 필요한 공·사의 문서를 수집하며 사적(史蹟)의 조사 및 관계자로부터의 사실 청취의 일을 맡는 사료수집부, 각 사료에 기초하고 역대 실록에 준하여 편년체의 실록 편찬을 담당하는 편수부, 편집된 원고에 대하여 사실(史實)의 정확을 기하고, 문자 장구(章句)를 정리하여 실록 원고를 작성하고 간행할 때 교정하는 일을 맡는 감수부의 3부서를 두었다.

그리고 편집부만은 다시 1·2·3반의 세 반으로 나누었다. 각 부에는 위원·보조위원·서기를 두었다. 그리고 위원장 직할 하에 서무위원·회계위원을 배치하고 편찬실 서무는 보조위원서기가 담당하였다.

편찬위원들은 기술(記述)·체재·편책을 역대 실록, 특히 『철종실록』의 예에 따른다는 원칙을 세웠다. 다만, 다른 것은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목록을 작성, 그 일자 밑에 중요 기사를 요약, 수록하고, 날짜를 간지 대신 숫자로 표현하며, 갑오경장 이후의 조칙·약조 등을 원문 그대로 전재한 것이다.

편찬에 활용된 사료는 『승정원일기』가 주된 것이었고, 『일성록』·『계제사일기(稽制司日記)』 등도 이용되었다. 그 밖에도 각 사(司)의 등록(謄錄)·일기·계록(啓錄)·존안류(存案類)·문집류와 준비실에서 등사한 사료 및 사료수집위원들이 수집한 각종 사료가 이용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 실록은 민족항일기에 일본인들의 간여 하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실이 왜곡되었을 위험이 있다. 편찬 각 반 위원에 의해 편찬된 고서(稿書)는 반드시 감수부의 총책임자인 경성제국대학 교수에 의해 감책(監冊)·감증(監增) 등의 손질이 가해졌다. 또 실록 원고는 위원장인 일본인 이왕직장관의 결재를 얻어 간행되었다. 이러한 점들이 이 실록의 가치를 손상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순종실록』 부록은 일제에 의한 한반도강점 이후인 민족항일기의 황실과 이왕직을 중심으로 한 조선왕조 멸망 후의 기사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실록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고종실록』·『순종실록』은 『승정원일기』나 『일성록』, 그 밖의 관찬기록(官撰記錄)의 중요 내용을 채록하고 있어 고종시대사를 연구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다.

개항 이전까지는 비교적 원사료에 충실하나 이후의 기사는 매우 간략하다. 그러나 각국과의 여러 약장, 관제의 개폐, 관직의 차제(差除), 각사각영(各司各營)의 회계부, 폐단과 질고, 재변(災變), 진대(賑貸)의 기사가 충실하다. 뿐만 아니라 갑오경장 이후의 조서·칙령·법률·각령(閣令)·부령(部令) 등을 거의 망라하고 있어, 한국근대사연구에 주요 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참고문헌

『고종순종실록의궤(高宗純宗實錄儀軌)』
『실록편찬회회록(實錄編纂會會錄)』
『이왕직삼십년사자료(李王職三十年史資料)』
「고순종실록해제(高純宗實錄解題)」(최영희, 『고순종실록(高純宗實錄)』, 탐구당,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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