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민란 ()

목차
근대사
사건
1889년 9월 전라도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
목차
정의
1889년 9월 전라도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
내용

난의 원인은 백지홍(白智洪)이 그의 형을 좌수(座首)로 삼으려 하였고, 공금을 횡령하였으며, 안핵사의 조사를 엿보고서 민소(民訴)를 꾀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그대로 난의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난민은 공당(公堂)과 인가를 파괴하고 현감을 내쫓았으며, 공전(公錢)을 탈취하였다. 이후에도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일정기간 현의 성을 점령하였다.

이에 따라 조정은 나주목사 김규식(金奎軾)을 안핵사로 보내어 주모자 백지홍을 엄형한 뒤 먼 섬에 유배시키고, 현감을 내쫓은 박창규(朴昌圭)와 난이 발생하였을 때 앞장섰던 정홍기(鄭洪基)·박상룡(朴尙龍)을 목베고, 현감을 잘 호위하지 못한 좌수 김경문(金瓊文), 호장 박창휘(朴昶徽) 등도 유배시켰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일성록(日省錄)』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고종조(高宗朝)의 민란연구(民亂硏究)」(박광성, 『인천교육대학논문집(仁川敎育大學論文集)』 14, 1980)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