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년(태조 20)에 세웠다. 비신(碑身) 높이 7.5척, 너비 3.8척. 비문은 36행으로 되어 있으며 1행에 77자이다.
진철대사이엄(利嚴)은 고려 초의 명승으로 광조사에서 선풍(禪風)을 선양하다가 932년 입적하였는데, 입적 후 태조는 진철대사라는 시(諡)를 내리고 탑호를 보월승공(寶月乘空)이라 하였다.
이 비에 대하여는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와 『해동금석존고(海東金石存攷)』의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이엄이 입적한 뒤 937년에 광조사에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비의 형식은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추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탑비형식의 여운을 지닌 고려 초기의 탑비형식을 지니고 있다.
비의 찬자는 최언위(崔彦撝)이며 이환상(李奐相)이 썼다. 최언위는 최인연(崔仁渷)과 동일인으로 고려에 귀순한 후 개명하였으며, 이환상은 이환추(李桓樞)라고도 했는데, 『해동금석존고』에서 이오상(李吳相)이라 한 것은 이환상의 오기로 보인다. 비문의 서체는 해서로, 대체로 구양순(歐陽詢)계통의 서풍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