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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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천주교
사건
1899년 3월 10일, 대한제국 내부 지방국장 정준시(鄭駿時)가 교안(敎案)의 해결을 위해 천주교회 주교 뮈텔(Mutel, 閔德孝)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約定).
사건/조약·회담
일시
1899년 3월 10일
장소
서울 명동 주교관
관련 국가
대한제국
관련 단체
대한제국 내부, 천주교회
관련 인물
정준시, 뮈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교민조약(敎民條約)은 1899년 3월 10일에 대한제국 내부 지방국장 정준시가 교안의 해결을 위해 천주교회 주교 뮈텔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이다. 서문과 9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었고, 지방 관리와 신부가 준수해야 할 사항, 교안 해결을 위한 정부와 천주교회의 협력 등이 규정되었다.

목차
정의
1899년 3월 10일, 대한제국 내부 지방국장 정준시(鄭駿時)가 교안(敎案)의 해결을 위해 천주교회 주교 뮈텔(Mutel, 閔德孝)에게 제시한 천주교 약정(約定).
배경

1876년,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계기로 주1 정책을 추진한 조선 정부는 서양 국가와의 갈등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탄압하지 않았다. 1886년에는 조불수호통상조약(朝佛修好通商條約, 조불조약)이 체결되어, 선교 활동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프랑스 선교사는 호조(護照: 여권)를 발급받으면 조선의 전 지역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인은 조선인을 교회(敎誨: 가르침)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이용하여 선교사들은 전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이 조항들을 선교의 자유로 해석하고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선교에 종사하였다. 조선 정부는 천주교 선교를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을 주2.

그러나 한 세기에 걸친 주3 정책으로 인해 뿌리 박힌 천주교에 대한 박해와 탄압의 사회적 풍조는 일시에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정부와는 달리 일부 관료의 자의적 행위, 사회 조직을 통한 박해, 또 개인 행동에 의한 폭행 등으로 선교사 또는 신자에 대한 분쟁인 교안이 자주 발생하였다. 사건의 원인이나 책임 등을 두고 정부와 천주교회가 이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교안의 해결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內部)는 천주교회에 천주교 약정을 제시하였다.

내용

1899년 3월 10일, 내부 지방국장 정준시는 조선대목구장 주교인 주4에게 교민조약을 제시하였다. 교민조약은 서문과 9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었다. 서문에서는 신자들의 주5주6에 해가 되고, 주7의 본의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천주교회와 의논하여 약정을 맺는다고 했다. 지방관이 교회의 일에 간여해선 안 된다고 했고, 신자 관련 재판을 공정하게 처결하도록 했다. 선교사가 지방 행정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했고, 법을 어긴 신자를 두둔하거나 신자 관련 재판에 간여해선 안 된다고 했다. 신자가 신부의 지시를 핑계 대고 비신자를 잡아가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천주교 관련 사안이 있으면 내부와 천주교회가 상의하여 해결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결과

기존에는 교민조약이 1899년 3월 9일 자로 주8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약문에 서명이나 주9이 없다는 점, 뮈텔이 교민조약에 부정적이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교민조약의 체결 가능성이 적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약문도 정준시와 뮈텔이 논의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작성하여 뮈텔에게 제시한 초안(草案)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의의

한국 정부가 천주교회에 교민조약을 제시한 것은 한국정부의 천주교 관련 사안에 대한 태도 변화를 의미했다. 조불조약 체결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천주교 관련 사안에 대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교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지방관들이 행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한국 정부는 기존의 태도에서 탈피하여 천주교 약정을 제시하는 등 천주교 관련 사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Mutel, G., 최석우, 한국교회사연구소, 『뮈텔 주교 일기』 2 (한국교회사연구소, 2008)
방상근, 『한국천주교회의 역사』 (내포교회사연구소, 2018)

논문

노용필, 「천주교의 신앙 자유 획득과 선교 자유 확립」 (『교회사연구』 30, 한국교회사연구소, 2008)
양인성, 「개화기 천주교 선교 문제 연구」 (서강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1)
주석
주1

외국과 통상을 할 수 있게 항구를 개방하여 외국 선박의 출입을 허가함. 또는 그 항구. 우리말샘

주2

모르는 체하고 하려는 대로 내버려둠으로써 슬며시 인정하다. 우리말샘

주3

못살게 굴어서 해롭게 함. 우리말샘

주4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프랑스의 가톨릭교 신부(1854~1933). 파리 외방전 교회(外邦傳敎會) 소속으로, 1880년에 내한하였다가 1890년에 조선 주교(主敎)로 다시 내한하여 명동 성당 따위의 여러 성당과 신학교를 창립하였고, 한국 천주교사의 자료 수집에도 힘썼다. 저서에 ≪한국 순교사≫가 있다. 우리말샘

주5

폐단을 일으킴. 우리말샘

주6

정치상의 법도와 규칙. 우리말샘

주7

예전에, ‘기독교’를 달리 이르던 말. 서양의 종교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8

서로 약속하여 만든 문서에 도장이 찍히다. 우리말샘

주9

직무상 쓰는 도장.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의 직위 명칭에 ‘인(印)’ 자를 붙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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