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준(景俊), 호는 동빈(東濱). 서울 출생. 아버지는 장악원판사 권몽협(權夢協)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학정(李鶴貞)의 딸이다.
권시(權諰)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1636년(인조 14) 14세에 칠서(七書)와 『춘추좌씨전』을 독파하고, 태학에 들어가 『소학』을 강의하였다. 1642년 20세로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9년(효종 10) 경릉참봉(敬陵參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효종이 죽어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가 일어났을 때, 기년설을 반대하고 성균관유생들과 함께 3년설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다가 과거응시 자격을 박탈당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영월 동쪽 왕피고개[往避峴]에 가서 은거하였다.
숙종이 즉위하자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는 고결한 인품과 높은 견식을 갖춘 인물로 존경받았으며, 30년의 은거생활을 통하여 학문에만 힘썼으며, 천문과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1773년(영조 49) 채제공(蔡濟恭)의 추천으로 사헌부집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동빈만록(東濱漫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