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당집 ()

유교
문헌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이규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82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이규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8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82년 자질(子姪: 아들과 조카)들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서지적 사항

13권 7책. 석인본.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3에 부 1편, 시 997수, 권4∼6에 서(書) 139편, 서(序) 52편, 기 24편, 권7에 발 16편, 설 3편, 명 6편, 찬(贊) 5편, 자사(字辭) 1편, 제사(題辭) 1편, 혼서(昏書) 10편, 상량문 7편, 제문 32편, 권8에 애사 3편, 고유문 2편, 고사(告辭) 5편, 봉안문 3편, 축문 9편, 통문 4편, 묘도비(墓道碑) 7편, 권9·10에 비문 24편, 묘갈명 49편, 묘지명 6편, 권11·12에 묘표 101편, 권13에 추지(追識) 6편, 행장 8편, 전(傳) 6편, 가장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는 도잠(陶潛)의 「귀거래사」에 화답한 것으로, 소서(小序)에서 이규헌은 인격과 문장이 도잠과 다르지만 전원에 돌아온 뜻은 동일하다 하였다.

시 가운데 「문치소(聞薙騷)」는 1933년 왜인들이 강제로 삭발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지은 것으로, 사람이 짐승으로 변한다고 탄식하며 의리를 지켜야 할 때라고 하였다. 「분필(憤筆)」은 왜인들이 강제로 성명을 고치게 하고 강제로 군대에 끌어가며 집안을 수색해 곡식까지 빼앗아가는 것을 보고 울분하여 지은 것이다. 그밖에 당시 여성단체에서 호주(戶主)의 폐지와 동성의 통혼을 주장하자, 이에 호응하는 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읊은 것도 있다.

서의 「여김성구김회백(與金聖九金晦伯)」은 당시 정치의 잘못을 성토하고 정치에 참여하자는 김노동(金魯東)과 김택(金澤)에게 시사(時事)를 살펴보건대 우리들의 성토가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며, 또한 선비의 본분을 벗어나 정치를 논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출처(出處)의 의리에 관해 논한 편지이다.

행장의 「열사이공규하행장(烈士李公圭夏行狀)」은 익산·남포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해 왜적과 접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양팔을 잘리는 등 갖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은 열사 이규하의 행장이다.

전 가운데 「습재최공제학전(習齋崔公濟學傳)」은 최익현(崔益鉉)을 의병장으로 추대해 태인·순창 등지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왜병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른 최제학의 전이다.

참고문헌

『극재집(克齋集)』
『행해집(杏海集)』
집필자
이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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